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자비로운 이가 지혜로운 이 / 연중 제8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5-28 조회수934 추천수5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니실 때, 수석 사제, 율법 학자, 원로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한 가지 물어보자. 그러면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지 말해 주겠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그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라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라고 말할 터이니, ‘사람에게서 왔다.’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모르겠소.”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이런 따지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신앙 문제를 인간의 방식으로 판단하려는 이들이다. 예수님은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라며 그런 식의 접근은 외면하시겠단다. 그분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면 하늘의 힘 또한 떠나간다. 잘 모르더라도 인정하며 살아야 하리라. 때로는 그게 사랑일 수도. 모든 것을 알더라도 가끔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이 덮어 줘야 할 때도. 그래야 사랑이 자란다. 들추고, 따지고, 까발리는 곳에 어찌 ‘따뜻한 애정’이 자리할 수 있을지?

 

30년이나 한복 만들며 사신 분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이라며 이런 말씀을 하신다. 주문하는 이의 성격이 좋으면 염색에서 바느질, 자수까지 애먹이지 않고 곱게 된단다. 그렇지만 까탈이 심한 이의 옷은 아무리 조심해도 어느 한 구석이 꼭 애를 먹인단다. 너무 따지면 ‘삶이 따지는 만큼’이나 힘들어지니, 그만큼 쉬운 삶이 없다나.

 

누구나 지혜로운 이가되길 바랄 게다. 현명하게 살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리라. 그렇지만 어떤 삶이 그러한지 쉽게 알 수 없다. 시원하게 말해 주는 이도 드물다. 지혜로운 이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남에게 관대해야 한다. 타인의 허물에 너그러워야 한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에. 그러니 자비로운 이가 곧 지혜롭다. 그에게는 하늘의 힘이 늘 함께한다. 이렇듯 지혜는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자신의 ‘삶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누군가에게 너그럽지 못한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리라.

 

남의 부족함을 들추는 건 참으로 비겁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행동을 지혜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많은 이가 이런 유혹에 시달린단다. 남에게 주는 상처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남의 상처를 감싸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씻는 것과 같으리라. 이게 진정한 지혜일 게다. 베풀면 곱절로 돌아온다. 꼭 새겨 두어야 할 진리이다. 자비로운 이가 곧 지혜로운 사람임을! 우리 모두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성전,권한,지혜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