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남을 위한 삶 / 연중 제10주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05 조회수1,097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길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해 쓰러져 있는 이 보고는 연민을 느낀 착한 사마리아인, 만 달란트 빚진 종에 대해 가엾게 여겨 탕감해 준 주인, 미리 유산을 받고 도망친 아들이 알거지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멀리서 알아보는 아버지를 보자. 이처럼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건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이 요동치는 거다. 이러한 감정을 예수님은 시도 때도 없이 느끼시어 약한 이를 만나신다. 우리도 간절히 예수님을 찾을 때 그분은 더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리라.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가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울지 마라.” 하시고는, 관에 손을 대시자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이가 앉아서 말을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루카 7,11-15 참조)’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처럼 여겨진 이에게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가르치신다. ‘가엾은 마음’이란 속이 ‘요동칠 정도의 감정’을 의미할 게다. 따라서 당신 자신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신 예수님 주위에는 늘 가난하고 약한 이, 병든 이들이 있었다. 그들만은 예수님에게는 꼭 나타나신다. ‘예수님의 눈’에만 그들이 보이셨는지?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이야기에서 예수님이 느끼신 가엾은 마음의 깊은 사랑을 잘 볼게다. 예수님은 나인이라는 고을 성문에서 장례 행렬을 보셨다. 죽은 이는 젊은이였고, 그의 가족이라곤 어머니뿐이었단다. 과부는 당시에 의지할 데 없는 약자 중의 약자였는데, 그녀는 그나마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마저도 세상을 떠났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사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청했을 때에야 응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나인 고을에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나서신다. 그리고 가엾은 마음으로 그분은 과부를 위로하시고 죽은 그 외아들을 살리신다. 예수님의 눈에만 보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 과부에게는 행운이 뒤따랐다. ‘예수님 자애심’을 엿볼 수 있다.

 

기뻐하는 이들과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웃는 우리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분 눈에 보이는 약한 이 찾아 눈길 발길을 돌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러하시니, 우리 또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자. 예수님은 슬퍼하는 이와는 슬퍼하시고, 외로운 이와는 늘 함께 외로움을 나누신 자비로우신 분이셨다. 그분의 온 생애는 남을 위한 삶 그 자체였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겨야 할 마음가지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과부,나인이라는 고을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