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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음이 가난한 이가 참 행복을 /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06 조회수1,177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온유한 이! 땅을 차지하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 흡족해지리라. 자비로운 이! 자비를 입으리라. 마음이 깨끗한 이! 하느님을 보리라. 평화를 이루는 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리라.(마태 5,1-12 참조)”

 

예수님은 갈릴래아의 한 산 위에서 인류를 위해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이렇게 대헌장을 반포하신다. 인간의 참된 행복에 관한 선언이다. 이 선언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현존하게 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뺏고 빼앗기는 재력과 억누르고 억압당하는 권력에 바탕을 둔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이 정의는 불의한 사회 구조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삶을 위한 투쟁’이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살면 나중에 복을 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너는 지금 행복하다.’라고 선언하신다. 훗날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 지금 행복하다는 건 참으로 역설적이다. 특히 ‘박해받는 이가 행복하다.’를 꼼꼼히 생각하면, 그 선언은 이 세상을 반대로 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분께서 행복하다는 것은 지금 추구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것이니 지상 것에 그리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리라. 그 나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그러기에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사는 게 오히려 행복이란다.

 

이 땅에서 하느님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우선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다. 불의한 사회가 만들어 내는 물질, 권력적 가치들을 배격하고, 주님이 주시는 가치만이 인간을 참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열망으로 가득한 이들이다. 그 가치는 곧 진리이고 그 진리만이 주님 보시기에 이 세상을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하니까.

 

또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가난은 무소유가 아니다. 가난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소유’하게 할 게다.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신다. 재산과 물질을 소유하되 그것의 노예가 되지는 말란다. 사람과의 관계에 살지만 누구에게도 매이지 말자. 그러한 이가 ‘가난한 마음’의 소유자이니까.

 

행복 선언에 담긴 예수님 말씀은 물질의 소유와 집착에서 자유로울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이 아닌, 하느님과 의존적인 관계에서 생각하며 살 때에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을 때 불행하게 될게다. 가난한 마음이기에 채워 주신다. 자유로운 마음이기에 그분께서 함께하신다. 그분께서 채워 주시고 힘이 떠나지 않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가난한 마음’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그런 마음에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행복한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늘 바쁘게 사는 우리가 꼭 ‘새겨야 할 마음의 자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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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참행복,산상설교,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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