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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12 조회수1,95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6월 12일

연중 제11주일

제1독서 2사무 12,7ㄱㄷ-10.13

그 무렵

7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8 나는 너에게

네 주군의 집안을,

또 네 품에 주군의

아내들을 안겨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안을 주었다.

 그래도 적다면 이것저것

너에게 더 보태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자손들의 칼로 죽였다.

10 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2독서 갈라 2,16.19-21

형제 여러분,

16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복음 루카 7,36―8,3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8,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돼지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느님께 인간을 고발했습니다.
“하느님, 정말로 억울합니다.

 글쎄 인간들은 탐욕을 부리면서

많이 먹는 사람을 가리켜서

 ‘돼지처럼 먹는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을 뿐, 절대로 과식하지 않습니다.

위의 7~80%만 차면 세상의

산해진미를 코앞에 갖다 놓아도

 절대 먹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인데, 많이 먹는

사람에게 욕하듯이 ‘돼지’라고

 지목하는 것은 저희들에게

큰 모욕이 아닙니까?”
짐승은 자기 위에 넘치게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요?

배가 터지도록 먹기도 합니다.

그만큼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입니다.

음식만 그렇습니까?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에 취해서 제대로 말하지도

또 걷지도 못할 정도로 마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요?

요즘에 일중독에 빠져서 과로로

쓰러지는 분들을 봅니다.

그런데 동물들 중에서 과로로

쓰러지는 경우를 봤습니까?

  또 한 가지, 동물은 절대로

몸에 좋지 않으면 먹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몸에 좋지 않은

것들에 빠져서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는 경우도

참으로 많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먹는 것,

마시는 것, 일하는 것 등등

절제하지 못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인간이지만,

 이 인간 역시 동물보다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낫거나 못한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래에서

똑같은 존재로

모두가 사랑받아야 하며,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거룩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비교하고 판단하고

또 단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아 가십니다.

그런데 이 집에 한 여인이

향유 옥합을 들고 나타나지요.

그리고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손님을

초대해서 행하는

최고의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여인의 정성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여인은

 죄인이고 자신은 옳다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정성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별 다른 말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여인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지금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주님께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보여드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십니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선물이다.

(패디 S. 웰스)

향유 옥합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나타난 여인.

나의 입장? 너의 입장?

인터넷에서

아주 재미있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내가 화장을 하다가

갑자기 우는 것입니다.

남편은 갑자기 우는

아내에게 깜짝 놀라서

 물었지요.
“왜? 갑자기

왜 우는 거야?”
아내는 서럽게

울면서 말합니다.
“나이가 드니 내 얼굴이

쭈글쭈글

말이 아닌 거야.

이렇게

 늙어가는 것을 보니

슬퍼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네요.”

그러자 위로를

해 준답시고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야

거울을 볼 때만

 그 쭈글쭈글한

얼굴을 보지만,

매일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나는 어떻겠소?

참고 지내고 있는

나를 생각해서라도

울음을 멈추고

참으시오.”
아내를 위로한다고

 한 말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아마 전쟁이

났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했을까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위로의 말은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말해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 있었던 토요특강.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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