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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탓 , 네 탓 -인영균 끌레멘스신부님(스페인 라바날 델 까미노 성 베네딕도회)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12 조회수1,036 추천수5 반대(0) 신고

제1독서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 사무엘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12,7ㄱㄷ-10.13 

 

제2독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2,16.19-21 

 

복음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36―8,3<또는 7,36-50>



 

연중 제11주일(2016년 06월 12일) 내 탓, 네 탓

 

우리는 어느 한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는 자이거나 모르는 자입니다. 지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과 자신이 ‘죄인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은 ‘자기 자신’이 진정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는 ‘다른 사람’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둘 다 죄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아는 사람과 ‘다른 사람의 죄’를 아는 것에서 차이가 납니다. 여인은 죄인으로 자처하고 바리사이는 의인으로 자처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절대적 선’ 앞에 서면 자신의 허물을 감출 수 없습니다. 자신이 진정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겸손의 장에서 수도자가 겸손의 열 두 단계 가운데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면 다음과 같이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자기 죄에 대하여 매시간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 이미 무서운 심판대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규칙 7,64).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곧 이어 성인은 말하기를,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지옥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규칙 7,67.69). 사실 진정한 의미의 죄의식은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죄인이 아닌 양 삽니다. 다른 이를 손가락질 하기에 바쁠 때가 많습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우리 가슴을 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너의 큰 탓이로소이다”로 끝나기 일쑤입니다. 진정한 의인은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큰 죄인임을 주님 앞에 그리고 이웃 앞에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지요. 오늘 복음의 여인은 진정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앞에 용기를 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죄인인 여인을 의인으로, 사랑을 하는 의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진정 만나면 용기가 솟습니다. 이 힘에서 사랑을 시작합니다.

 

스페인 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델 까미노 수도원에서
인영균 끌레멘스 수사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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