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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13 조회수1,340 추천수14 반대(0)

예수님의 말씀 중에 설명이 어려운 내용이 더러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본성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가열하면 수증기가 되고 물의 본성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물은 위로 올라가는 본성을 가지게 됩니다. 가열하지 않는 물은 하늘로 올라 갈 수 없습니다. 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지 않으면 대지는 메마르고, 생명은 죽어갈 것입니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찾아 가려는 우리들의 본성을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예전에 무술영화를 보면 비슷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스승님은 처음부터 무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가서 물을 길러오라고 합니다. 매일 물을 길러오면서 마음 수양을 하고, 무술을 배울 수 있는 기본 체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어린 나무를 심고, 매일 나무를 뛰어넘으라고 시킵니다. 나무가 자라면서 더 높은 곳을 뛰어넘게 됩니다. 스승님은 그런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무술을 가르쳐 줍니다. 기본적인 체력과 무술을 배우려는 인격을 갖추어야 비로소 무술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격이 급한 제자들은 그런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하산하곤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어내는 제자는 진정한 무술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아합 왕과 이자벨 왕비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합니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권력을 얻기 위해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재물을 얻기 위해서 영혼을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가습기가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는 것은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섬마을에서 근무하는 여 교사에게 폭행을 저지른 이들은 욕망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탐욕 때문에 아름다운 지구별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살아야 할 생명의 터전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 매일 선행을 베푸는 것,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것,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이 아닙니다. 조금씩 실천을 하면,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시도해 보면 어느덧 신앙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양심을 팔아넘기고, 폭력을 행사하고, 사기를 치는 것은 별나라에 사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양심을 속이면, 세상의 것들에 물이 들면 그렇게 변해가는 것입니다. 원래 선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악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게 살면 선한 사람이 되고, 악하게 살면 악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법과 하느님의 법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물질, 명예, 권력을 추구합니다. 경쟁과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만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법은 1등은 기억하지만 2등은 별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은 멀리 떨어져있는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아픈 사람들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나의 가족, 나의 직장, 나의 나라가 우선입니다. 세상의 법은 많은 능력과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행복은 성적순, 능력순, 명예순, 권력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법에는 낙오자가 생기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법은 양보, 겸손, 희생,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행복은 물질, 명예,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합니다. 적자생존, 자연도태와 같은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서로 나누기만 한다면 우리가 모두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굶주린 사람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몸은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있듯이, 우리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사람들 모두는 하느님 중심으로 한 몸을 이룬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내 몸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물론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가야할 길이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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