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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14 조회수1,30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독서 1열왕 21,17-29

나봇이 죽은 뒤에,

17 주님의 말씀이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복음 마태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가 지금의 모습이 아닌,

소련 공산국가로 있을 때입니다.

사유재산제도의 부정과

공유재산제도의 실현으로

 빈부의 차를 없애려는

공산주의로 인해 모든 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지요.

사람보다 사상이,

 또한 경제보다 정치가

더 우선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똑같이

나눠 쓰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경제는

악화되고 사회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흉년까지 계속되자

소련 공산국가는 1%의 사람들을

특별 선별해서 나쁜 박토를 주고

자유롭게 농사지어

먹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들

1%의 농민이 생산한

농업 생산량이 전체 소련

농업 생산량의 27%나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감자는 62%, 우유와

쇠고기는 34%, 계란은 47%의

엄청난 생산량을 기록했지요.

그때 비로소 소련 당국자들은

집단농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주의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노력의 결실이 나의 것이

되지 못하자 사랑과 애정을

쏟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농사가 잘 되려면

분명히 사랑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모든 일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모든 진짜 성공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사랑과

애정이 필요했습니다.

공부를 잘 하려면

 공부를 사랑해야 하고,

 일을 잘 하려면

자신의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잘 가지려면

 상대방을 사랑해야 하고,

뜨거운 신앙을 갖고 싶다면

주님을 철저히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랑을

종종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사랑이 가끔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내세우는 사랑, 내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다는 조건

가득한 사랑입니다. 이것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진짜 사랑이 아닌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반대하는 원수를 사랑해서

 하신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이르신 것입니다.

즉, 원수들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미워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생명이라는

큰 선물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원수로 인해서 지금의 육적인

삶도 힘들어 죽겠는데,

주님 곁으로 가서도 그 원수 때문에

이번에는 영적으로 또다시 고통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누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 불가능한 일을

명령하신 적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뿐 사실은

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어떤 사랑을 간직해야 할까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철저한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삶은 모두 만남에서 온다.

너를 통해 내가 되어 가며,

내가 되어 갈 때 나는 너를 말한다.

(마르틴 부버)

사제연수 중이신 인천교구 신부들.

그러나 성지에는 미사가 계속 있습니다.
침묵의 힘

어떤 부인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서 말합니다.
“선생님 더는

 남편과 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은 너무 신경질적이고

잔소리가 심해요.”
의사는 한참 고민하다가

처방을 내렸습니다.

"우리 병원 옆에

신비한 샘이 있습니다.

 샘물을 한 통 길어서

집으로 가져가세요.

남편이 귀가하면

샘물을 한 모금 머금으세요.

그런데 머금기만 해야지

절대 삼키면 안 됩니다.

처방대로 하시면

금방 효과가 있을 겁니다.”
부인은 처방대로

샘물을 길어서 돌아갔습니다.

그 날도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평소처럼 짜증과 잔소리를

아내에게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부인도

맞받아쳐 싸웠을 테지만,

 그 날은 처방대로 신비한 물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었구요.
얼마가 지나자,

남편은 잠잠해졌습니다.

그 날 하루가

 무사히 지나간 것이지요.

그 날 부터 남편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부인은

어김없이 신비의 샘물을

 입에 머금었구요.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신경질이 줄고

아내를 함부로 대하던

행동도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신비한 효과에 깜짝 놀란

아내가 의사를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신비한 샘물이 너무 좋더군요.

우리 남편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의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변한 것은 물이 아니라,

 당신의 침묵 덕분입니다.”
침묵의 힘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침묵을 지키면

바보 같고, 또한

패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말을 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대화는 상대를

찍어 누르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말의

나열이 아닙니다.

이러한 말은 아픔과

상처를 줄 뿐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말보다

 침묵이 효과적임을 깨닫습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면 상대 스스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돌아볼 여유를 주는 것이

바로 침묵인 것입니다.

들꽃이 너무 예뻐서 찍어보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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