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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작은 티끌보다는 큰 들보를 /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0 조회수3,476 추천수0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심판받고, 되질하는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의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의 들보를 빼라. 그래야 뚜렷이 보고 형제에게서 티를 빼낼게다.”(마태 7,1-5 참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이들보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그러나 실제는 그 반대일 수도. 자기를 아는 이 중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이가 긍정인보다 많다는 뜻이리라. 이게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는 예이다. 이는 남이 자기를 보는 시각과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실상 다르리라는 뜻일 게다.

 

사실 남의 단점과 약점을 바라보기는 쉬워도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남 비판하는 데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판단은 못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기만과 가식의 가면을 벗으라는 거다. 우리는 남에게는 살쾡이 눈을 가졌고, 자신에게는 두더지 같은 눈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 있다. 아픈 지적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작 자신의 본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 눈이 먼 이가 바로 나이기에.

 

건물을 지을 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바닥이나 천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 한다. 금방 눈에 뜨인다. 하지만 티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 눈의 티끌은 쉽게 찾는다. 그러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못 본다. 어떤 이가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이일까? 남을 심판하는 이란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일침을 주셨다. 이렇게 타인을 심판하기는 쉽다. 본인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말하기는 누워 떡 먹기다. 순간적으로 방심을 하면 누구나 무턱대고 빠지는 실수이다.

 

우리는 멀리 있는 이를 그리 흔히 탓하지는 않을게다. 그렇지만 매일 만나는 이를 곧잘 탓한다. 그렇게 모르는 이를 심판하지 않는다. 잘 아는 이를 심판해 된다. 물론 서먹한 이도 공격하지 않는다. 친한 이 만을 막 쏘아대며 몰아붙인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사랑하는 이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사랑이 완성되리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평생 동안 직접 보지 못하는 얼굴이 있다. 늘 함께 있지만 오로지 거울을 통해서만 본다. 바로 자신의 얼굴이다. 다른 이의 얼굴은 이리저리 직접 살피지만 자신은 어딘가에 비추어야만 볼 수게다. 그래서 예수님의 그 말씀대로, 형제의 눈에 든 작은 티는 잘 보면서 자신 눈 속의 그 큰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티끌,들보,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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