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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0 조회수1,498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6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독서 2역대 17,5-8.13-15ㄱ.18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는

 5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6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할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7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8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13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14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15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18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복음 마태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반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 쌍의 부부가 유람선 여행을

떠났다가 재난을 당해서 침몰

 직전의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이제 구조선으로 옮겨 타야 하는데,

구조선에 남은 자리는

딱 한 자리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아내를 침몰하는

유람선에 남겨둔 채 자기 혼자

구조선에 올랐습니다.

이 남편을 향해서 아내는

뭐라고 소리쳤을까요?”
“당신 같은 사람을

남편이라고 내가 믿었다니...”,

“내가 정말 눈이 삐었지.”,

“당신을 저주해요.” 등등 학생들은

격분에 차서 힘껏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화가 나서 말하는

아이들의 말이 멈추어질 때 한 명의

 학생이 “선생님, 아마도 아내는

아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때의 실제 상황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사고 당시 아내는 이미 고칠 수 없는

 중병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아이를 맡기면서

자기 대신 잘 키워 달라는 것이었고,

남편은 아내와 함께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아이를 위해서

자신만 구조선에 오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남편의 결정이 잘못한 것일까요?

그래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보이는 것과는 너무나도 다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냥 보이는 데로 믿고 보이는 데로

 판단하고

 단죄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선과 악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절대로

쉽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 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마 다름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서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기 전에 먼저 우리 눈에

있는 들보를 빼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뚜렷이 볼 수 있게 되어서

다른 형제의 눈에서 티를 제대로

빼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티는 재나 흙, 겨 등의 조그마한

부스러기나 찌꺼기를 말하지요.

그에 반해 들보는 집 지을 때

중심이 되는 두 기둥을 가로질러

걸치는 나무입니다.

티야 눈에 들어갈 수 있지만,

들보가 눈에 들어가면

큰 일 나겠지요.
따라서 성경에서 ‘티’란 것은

조그마한 흠집, 곧 남의 작은

허물이나 결점을 의미합니다.

그에 반해 ‘들보’는 상대의 작은

허물에 비교도 되지 않는 자신의

큰 허물이나

결점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즉, 자신의 큰 허물과 결점은

보지 않고 남의 자그마한 결점과

 허물을 보고 있는 성숙하지 못한

우리들을 꾸짖는 말씀인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슴에 담아서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지 않는 삶,

그보다는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성숙한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속도를 얻으면 풍경을 잃고

 속도를 잃으면 풍경을 얻는다.

(김경집)

이 콩국수는 맛있을까요? 맛없을까요?

먹어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못난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납시다.

아이큐 173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의 실수로 아이큐가

73으로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고,

실제로 이 아이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감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진짜

아이큐가 173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면서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고 후에 아이큐

150 이상의 천재들만 가입한다는

국제멘사협회의 회장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그가 바로 책 ‘바보 빅터’의 주인공,

 빅터 세리브리아코프 회장입니다.
소위 ‘못난이 콤플렉스’가 얼마나

스스로의 성장을 가로막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그 누구도 못난이가

될 수 없다는 것, 또한 하느님께서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섬세하게 만드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난 안 돼.

나는 안 될 거야.’

등의 생각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내 편이니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실제로 내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면 부정적인 운명이

뒤따라온다고 하지요.

그러나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나의 운명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못난이 인형.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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