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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5 조회수1,35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6월 25일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독서 애가 2,2.10-14.18-19

2 야곱의 모든 거처를

주님께서 사정없이 쳐부수시고,

 딸 유다의 성채들을

당신 격노로 허무시고,

나라와 그 지도자들을 땅에

쓰러뜨려 욕되게 하셨다.
10 딸 시온의 원로들은

 땅바닥에 말없이 앉아,

머리 위에 먼지를 끼얹고

자루옷을 둘렀으며,

예루살렘의 처녀들은

 머리를 땅에까지 내려뜨렸다.
11 나의 딸 백성이 파멸하고,

도시의 광장에서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눈은 눈물로 멀어져 가고,

내 속은 들끓으며,

내 애간장은 땅바닥에

 쏟아지는구나.
12 “먹을 게 어디 있어요?”

하고 그들이

제 어미들에게 말한다,

도성의 광장에서

부상병처럼 죽어 가면서,

어미 품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면서.
13 딸 예루살렘아,

나 네게 무엇을 말하며

 너를 무엇에 비기리오?

처녀 딸 시온아,

너를 무엇에다 견주며

 위로하리오?

네 파멸이 바다처럼 큰데,

누가 너를 낫게 하리오?
14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18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려라.

너는 휴식을 하지 말고,

네 눈동자도 쉬지 마라.
19 밤에도 야경이

시작될 때마다

일어나 통곡하여라. 주

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길목마다 굶주려 죽어 가는

 네 어린것들의 목숨을 위하여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복음 마태 8,5-17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종이 나았다.
14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을 때,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셨다.

15 예수님께서 당신 손을

 그 부인의 손에

대시니 열이 가셨다.

그래서 부인은 일어나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6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많이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악령들을 쫓아내시고,

앓는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17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그는 우리의 병고를 떠맡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졌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학교 수업을 하는데 도저히

따라오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 이 아이는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지요.

선생님들도 이 아이에 대해서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는

 아이라는 판단이었지요.

더군다나 도무지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게을러서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해서

이러한 말까지 합니다.
“글도 읽지 못하면서

넌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이 비꼬는 말에 아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선생님께서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가

작가가 될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보기에는 가능할 것 같습니까?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불리는 아이, 더군다나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아이,

작가가 될 수 없는 환경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2008년에

‘시’분야에서 언론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받습니다.
바로 시인 필립 슐츠입니다.

그가 글을 읽지 못했던 것은

바보도 또 게을러서도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글자를 읽거나 쓰는데 어려운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나를 보는 것과 똑같은

시선으로 자기를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결점부터

보는 일을 중단하고,

 스스로를 믿는 순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문제를 우선시할 때

실패할 확률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자그마치 17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실패할 가능성이라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공할

가능성에 집중한다면 어떨까요?
오늘 복음에는 한 백인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로마의 백인대장으로 나름

힘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지요.

그런 그가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라고 하셨는데,

그는 놀라운 신앙 고백을 하지요.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한 말씀만으로도

충분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백인대장의 위치에 내가 있다면

예수님께 어떻게 청했을 것 같습니까?

눈으로 보고 귀로 직접 들어야

믿는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직접 우리 집으로 와 주시기를

그리고 직접 손을 대고 직접 말씀을

하셔야 고쳐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믿음이란 실패할 가능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자리에 주님을

 모실 수가 있으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원하는 걸

생각하고 그것이 마음에

가득하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에 나타날 것이다.

(론다 번)

백인대장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화를 다스리는 법

(‘좋은 글’ 중에서)

자신의 힘이 가장 세다고

 자랑하는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 중간쯤을 걷고 있을 무렵

사과만한 이상한 물건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힘센

헤라클레스님의 앞길을 방해하다니.

 참을 수 없어 에잇!” 하며

그 이상한 물건을

툭 하고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러자 사과만 했던 그것이

어느새 수박처럼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이게 나를 놀리네?”
어느새 흥분한 헤라클레스는

다시 힘껏 발로 차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바위만큼 커져 버렸습니다.

더욱 열이 오른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커다란 쇠몽둥이를

그것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헤라클레스가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려 어느새

길목을 꽉 막아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흥분한 헤라클레스 앞에

아테네 여신이 나타났습니다.

아테네 여신은

그 이상한 물건을 향해 웃으며

노래를 들려주자 순식간에

원래 크기로 돌아가

툭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헤라클레스가

아테네 여신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저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테네 여신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건 논쟁과 불화의 정령이라서

가만히 놓아두면 별것 아니지만,

이것과 싸우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이 화를 없애겠다고 그 대상과

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실제로 싸움도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때

 화가 과연 없어졌을까요?

아마 화가 더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화를 없앨 수 있을까요?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지만,

줄어들게는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것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을 때,

그리고 심한 논쟁이나 싸움을

피해 나갈 때가 아닐까요?

전쟁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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