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말씀의초대 2016년 6월 26일 주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5 조회수1,03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년 6월 26일 주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이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나선

올 한 해도 절반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주님의 뜻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으니 육의

욕망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도록 합시다. 

말씀의초대

엘리야가 자신의 뒤를 이을

예언자로 엘리사를 부르자,

그는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먹인 다음 엘리야를

따라나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으니

육의 욕망을 따르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라고

 가르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

◎제1독서

<엘리사는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섰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9,16ㄴ.19-21
그 무렵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16 “아벨 므홀라 출신

사팟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19 엘리야는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사팟의 아들

엘리사를 만났다.

엘리사는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열두 번째 겨릿소는

 그 자신이 부리고 있었다.

그때 엘리야가 엘리사 곁을

지나가면서 자기 겉옷을

그에게 걸쳐 주었다.
20 그러자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와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선생님을

따라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다녀오너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느냐?”
21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쟁기를 부수어

그것으로 고기를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 일어나 엘리야를

 따라나서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 5ㄱ 참조)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저를 타이르시는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제 마음 기뻐하고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주님, 당신은

제 몫의 유산이시옵니다.

◎제2독서◎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 

5,1.13-18
형제 여러분,

 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1사무 3,9; 요한 6,68
◎ 알렐루야.
○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선택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이른바 ‘결정 장애’를 겪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명확했던 과거

‘규율 사회’에서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해도 되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른 바 ‘긍정성의 과잉’이

‘결정 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이를

 ‘피로 사회’가 겪는

병리학적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내 선택이 삶의 궁극적 가치와

맞닿을 때 인간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자유롭지만,

강요된 선택이거나,

허영과 공명심에

이끌린 선택의 경우,

일이 잘못되면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따라나서고자 하는 다양한

이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수행하던 제자들은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인들을 저주합니다.

 자신들의 신념만이 최고라고

 믿는 배타적 태도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명예와

안정이 보장되어 있는 길이 아닌,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고독한 여정입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기면서도

죽은 이들 속에 머물려는 이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여정에 혈연과

인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보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

나선 모습과 사뭇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하고

 후회하는 자유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삶의 궁극적 목표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초월적 자유를 원하십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자유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황 주일인 오늘은

예수님의 자유를

품고 사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