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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6.27 월/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 하는 투신의 삶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6 조회수1,242 추천수7 반대(0) 신고




연중 13주간 월 마태 8,18-22(16.6.27)

“나를 따라라.”(마태 8,22)



The would-be followers of Jesus





과거와 미래를 현재화 하는 투신의 삶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8,21) 따르겠다는 이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8,22)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예수님을 추종하는 이들이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부르심은 한 인간의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중요하고 급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은 삶의 우선순위와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 가장 기본적인 중심과 순위가 뒤바뀌는 순간 인생은 하느님과 무관한 죽음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고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행하는 것을 인간의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 할 때 우리는 참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일에 무관심 하라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하느님을 품고 행하고 만나야 하며, 무엇이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왜 유대인들이 그토록 중요시하였던 장례 의무까지도 무시하시며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 까닭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유일무이한 시간에로 초대받았으며 그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가까워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 또한 예수님에게나 제자들 모두에게 급박한 까닭입니다.

또한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처럼 죽음이 아닌 생명을 위해 자신을 투신하라는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라는 말씀은 무덤을 파주는 사람처럼 영적으로 죽은 사람, 생명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고집스럽게 죄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말로써 험담과 거짓과 중상모략을 하고, 죽음의 문화에 동참하는 행동을 하며, 미움과 증오, 시기 질투, 온갖 탐욕적인 생각을 하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지니면서 역설적으로 반생명적인 말과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면 죽은 이들의 장사를 지내는 죽은 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과거에 집착하거나 과거 지향적 삶에서 벗어나 과거를 현재화(아남네시스)하고 미래를 현재화(프로렙시스) 하라는 말씀입니다. 과거에 묶여 사는 사람은 바리사이나 루카복음의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처럼 사사건건 ‘왜?’라는 물음을 자주 던지고 불평불만을 터트리며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답게 과거를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께서 미래에 나를 통하여 이루실 일을 내 삶의 현재 안으로 가져오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는 어렵고 힘들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엠마오의 제자들이나 베드로처럼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은총과 뜻을 헤아리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안일함에서 벗어나 일상의 삶 안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해야겠습니다. 이 절박한 은총의 때를 뒤로 제쳐두고 나를 위한 현세적이고 육적인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오늘도 과거의 추억이나 상처에 파묻히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 속에 영혼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사’를 치르는 ‘죽은 이’의 길을 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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