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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갈라5,1, 13-18)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7 조회수1,08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626/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갈라5,1, 13-18)

 

 

 

갈라5,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은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노릇하게 하는 멍에에 매이지 마십시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가 신자들을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해주신 위대한 해방자이셨음을 선포했다. 그런 다음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그 자유 안에 굳세게 서라고 호소했다(2테살2,15),

 

이는 이방종교의 종의 멍에로부터 벗어난 그들이 모세의 율법의 종노릇에 말려들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위험의 본보기인 할례를 거론하면서 바오로는 그 의식을 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강력한 경종을 울렸다. 곧 그들이 그 의식을 행하여 행위에 의한 의를 구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고 바오로는 선언했다(2).

 

오늘 본문 갈라5,1, 13-18절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하여 5,2-12절의 개략적인 내용을 검토하는 것은 유익하다! 갈라티아 신자들이 칭의(稱義)를 위해 율법의 어느 한 부분 아래 놓이게 되면, 그는 모든 율법의 요구와 저주에 대한 채무자가 된다(3).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데, 이는 그러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향권 안에서 살지 않으리라는 뜻이다!(4)

 

율법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행위가 아닌 믿음을 좇는 참된 신자는 구원의 완성을 간절히 기다린다(로마8,18-25). 구원의 진정한 영역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6). 문제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다(5,13)! 진정한 믿음은 사랑을 통하여 역사한다.

 

많은 거짓 스승들이 갈라티아 신자들을 방해하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유대주의자들을 지목하고 있다. 그 결과 신자들은 더 이상 진리를 순종치 않게 되고, 경주(競走)를 믿음이 아닌 율법주의적인 자기노력에 의해 마치려 하고 있었다(7). 갈라티아 신자들이 따르기 시작한 그러한 거짓된 가르침은 그들을 부르신 하느님께로부터 유래되지 않았다. 주님은 그들을 은총 앞으로 부르셨는데, 그들은 이제 다른 음성들에 현혹되어 거짓 복음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8-10).

 

사도 바오로는 격언 하나를 인용하면서(9), 거짓된 교훈이란 마치 누룩처럼 퍼지며 스며든다고 경고했다! 바오로는 진리로부터의 조그만 이탈이 온 체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 같다! 예컨대, 만일 할례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면, 은총의 모든 체제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비성경적인 수없이 많은 것들과, 해방신학 등과 같은 이단이 바로 그러하다!

 

바오로가 전한 복음의 메시지는 구원에 대해 아무런 공헌도 할 수 없는 인간의 철저한 무능력을 선포한 것이었으며, 유대주의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었다. 따라서 십자가는 율법체제를 종식시켰고, 할례와 모세 율법의 준수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다(11).

특히 5,12절의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에서 바오로는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곧 그는 할례에 대해 그토록 열광적인 유대주의자들이 마치 소아시아의 시벨(Cybele, 프리지아의 여신)의식을 집행하던 이교 제사장들이 그랬듯이 스스로 베어버리기(거세하기)를 원했다.

이로 인한 육체적 불구는 아마도 그들이 새로운 개종자를 생산해 내지 못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오로의 심정을 그린 듯하다! 할례가 한 때는 이스라엘 안에서 언약의 증표였지만, 이제는 옛날의 이교도들이 시행한 종교의식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13-14절은 형제님들, 여러분은 자유를 위하여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육체를 위한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왜냐하면 온 율법이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라는 이 한마디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말하면서 율법의 종노릇하는 상태로 돌아갈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했었다.

 

또한 그는 여기서 다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방종으로 빠지는 것을 경고했다. 특별히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그들의 자유를 죄가 발을 붙일 교두보로 사용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자유가 정욕을 채우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의 참된 목표는 사랑이어야 한다!

 

갈라티아 신자들은 율법이나 죄악된 품성, 곧 육체의 종노릇하기보다는 서로 종노릇해야 했다. 짐스럽고 무서운 두 종류의 종노릇에 대해 경종을 울린 바오로는 또 다른 형태의 유익한 종노릇을 권면했다! 서로 사랑하는 종노릇, 이를 보강하기 위해 바오로는 레위19,18절을 인용하면서 온 율법은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는 이 한 말씀에 요약되었다고 말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율법의 성취 혹은 완수임을 알리기 원했다. 그는 이 문제를 로마13,8-10에서 발전시켰다!

 

15절은 여러분이 서로 물고 삼킨다면 양쪽 다 멸망할 것이니, 조심하십시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거짓 스승들의 침투로 인해 교회는 분열되고 쓰라린 분쟁에 말려들었다. 율법주의의 추종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은 서로 물고 뜯고 있었다.

이것은 사랑의 유대감 속에 공존해야 하는 신자들의 성경적 이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교회의 파멸, 곧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신앙고백의 상실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신은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 사정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16절은 내가 말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앞 절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페리파테이테라는 동사는 현제 명령형으로서 문자적으로는 계속 걸어가라.”는 뜻이다.

 

신자는 그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주하시는 성령께 의지하여 인도하심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신자의 영 속에서 자동적으로 역사하시지는 않는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의존하기를 기다리신다! 고난을 통하여 죽음을 체험한, 곧 십자가를 통과한 사람만이 자아의 능력을 철저히 부정하고 전적으로 그분에게 의존하게 된다!

 

신자가 성령의 지배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때, 그는 결단코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생에서 어떠한 신자도 타락한 인간의 품성, 곧 육체에서 나오는 악한 욕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하지는 못할 것이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기에 전적으로 굴복하지 않고 승리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17절은 왜냐하면 육체는 욕망을 일으켜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이어서 성령에 의해 지배되고 활력을 얻는 삶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성품이 있는데, 하나는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이고, 다른 하나는 거듭나 하느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을 때(2베드1,4) 받는 새 성품이다.

 

두 성품 다 욕심(desire)을 가지는데, 하나는 악한 욕심을, 다른 하나는 거룩한 욕심을 가진다! 따라서 이 둘은 서로 대적하게 되는데, 그 결과 신자는 자기 행동에 양쪽의 견제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신자가 자기의 지배를 허용할 때, 육체의 악한 욕심을 가로막아 주신다!

 

18절은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여러분은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바오로는 결론적으로 경건한 삶은 율법의 지배 아래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된 삶임을 강조한다! 마치 칭의가 자기 행위로 말미암을 수 없음 같이, 성화도 사람의 노력으로는 성취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갈라티아 신자들이 아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이 두 가지 경우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철저히 수동적이란 의미가 아니다! 믿음의 응답, 곧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성화시키시는 성령께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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