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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묵상]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9 조회수1,289 추천수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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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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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워크숍에서 천황폐하 만세 삼창을 건배사로 외쳤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잔혹한 일제 식민통치의 트라우마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은 지금, 할 말이 따로 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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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동주(안소영, 창비)를 읽으면서 우리 민족이 얼마나 참혹한 시절을 견뎌왔는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전쟁을 확산시켜나가면서 우리 민족에게 가한 거짓말 같은 탄압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불과 5~60년 전의 일입니다. 창씨개명, 국어 박탈, 강제 노역, 강제 징집, 생체실험...무엇보다도 치를 떨리게 한 것은 건강한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제 징집까지도 모자라 새싹 같은 우리 어린 소녀들까지 데려가 위안부 역할을 하게 하면서 그 소중한 인생들을 무참히 짓밟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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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통치가 길어지고 극에 달한 시절 두려움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당대 문인들 사이에는 체념하는 분위기가 짙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영원한 일본의 식민지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 말입니다. 당시 조선 문인 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광수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반도 문학의 새로운 건설은 내선일체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당시 대세 문인이었던 최남선 역시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정책을 적극 옹호하면서 그 길을 따르는 길만이 민족을 위한 길이라며 변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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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 속에서 윤동주 시인은 괴로워하며 숱한 밤을 지새우다가 마침내 절필을 선언합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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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의 시()가 쉽게 다가오고 만인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이렇게 그는 시대와 삶 앞에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닿아봤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는 깊은 우물 끝에 닿은 두레박이 길어 올린 샘물처럼 맑고 서늘합니다. 그의 시는 우리 마음속의 순수하고 고요한 본령을 건드려 순식간에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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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를 쓰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시대에 청년기를 보냈던 윤동주 시인은 확신했습니다. 혼란과 좌절의 시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민족과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은 최선을 다해 시를 쓰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설령 그 일이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고 마침내 죽음으로 내모는 길이 된다 할지라도. 그래서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시를 썼습니다. 순수한 자신의 내면의 부끄러움과 순수함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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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이 시를 통해 우리에게 남긴 언어들이 지닌 한 가지 특징은 순수함이며 정직함입니다. 그리고 시의 배경에 깔려있는 분위기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입니다. 그는 잔인하고 참혹한 야수의 시절,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부끄러운 시대와 온 몸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높은 벽 앞에 시를 쓰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를 통해 거대 악에 맞서 싸웠습니다. 이렇게 그가 지닌 무기는 열정과 순수함과 그리고 시대 앞의 부끄러움이었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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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반석이 되신 베드로·바오로 사도 역시 열정과 순수함, 부끄러움과 진지한 성찰 측면에서 탁월한 분들이었습니다. 우리 시대 주변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삶을 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두 사도는 지난 날 자신들의 삶 안에서 벌어졌던 실수와 과오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가슴을 쳤습니다. 한 마디로 부끄러움을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의 인생 안에서 철저하게 감추고 싶은 흑역사를 만민 앞에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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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잔잔하던 자신들의 일상에 파문을 일으키며 다가온 예수 그리스도란 존재 앞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분께서 지니고 오신 엄청난 가치관과 비전 앞에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때로 부족한 그릇으로 인해 너무나도 큰 새로움이신 그분 존재를 수용하기가 버거워 부대끼기도 했습니다. 때로 배신의 길을 걷기도 했었고, 그로 인한 깊은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들의 전존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자신과 스승이 되었으며 이런 고백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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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강할 열정과 새로운 가치관 앞의 순수한 자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절대자 하느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한 솔직한 인정, 지난 삶 안에서 벌어진 오류에 대한 부끄러움, 자신에 대한 지속적이고 진지한 성찰의 결과로 인해 베드로·바오로 사도는 제2의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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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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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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