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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6.3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30 조회수1,552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6년 6월 30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독서 아모7,10-13

그 무렵

10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가

 이스라엘 임금 예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아모스가 이스라엘 집안

한가운데에서 임금님을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그가 하는 모든 말을

더 이상 참아 낼 수가 없습니다.

11 아모스는 이런 말을 해 댑니다.

‘예로보암은 칼에 맞아 죽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갈 것이다.’”
12 그런 뒤에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16 그러니 이제 너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이스라엘을 거슬러

예언하지 말고,

이사악의 집안을

거슬러 설교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17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네 땅은 측량줄로 재어

 나누어지고,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복음 마태 9.1-8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갑곶성지에 있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달리는 차에 부

딪혀서 논두렁에

쳐 박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양쪽 손목에 골절을 당했지요.

당시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신부가 저 혼자였고, 또한 식복사가

없어서 혼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이런 상태에서

양쪽 손목 골절을 당했으니,

저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우선 그 당시가 5월이었기에

순례객들이

참 많을 때였습니다.

순례객들이 많이 오면

좋기도 했지만 이때는

정말로 싫을 수밖에 없었지요.

 왜냐하면 성체분배 하기가

 너무나 힘들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순례객이 한 천 명 정도 오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을

천 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고나면

목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리스도의 몸’

이라는 말만으로도

목이 쉬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당시에

더 힘든 것은

 손목을 움직이지 않고

 성체분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손목을 이용하면

 너무나 아프니까요.

이밖에도 청소하는 것,

식사하는 것,

 성지 바깥일을 하는 것

등등 힘든 일이

너무나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더 쉽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 손목 골절을 알고는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계시는

신부님들이 와주셔서

성체분배를 도와주셨고,

제가 아는

지인들이 오셔서 사제관

 청소와 함께 식사까지

 준비해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별 무리 없이 할 수 있었지요.
당시에 제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다른 이들과 함께

아니 엄청난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전에는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중풍병자를

 떠올려보십시오.

중풍이라는 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전신이나

 반신 또는

  사지 등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병이지요.

이렇게 마비가 되면

어떨까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평상에 중풍병자를

뉘어서 데리고 옵니다.

 중풍병자를

바람을 채워주기 위해서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우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내 죄의 용서가

나의 믿음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죄의 용서가

나를 도와준 그 누군가의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내 이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내 이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

간절한 기도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울증의 극복.

‘하루에 한번 마음 돌아보기’의

저자인 일본의 심리학자

 에토 노부유키 교수는 우울증을

 연구하다가 이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답니다.
“나는 우울증에 걸려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우울증에 걸려봐야 한다.”
직접 우울증을 체험하기 위해,

3개월 동안 한숨만 쉬면서

웃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극도의 우울증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가르치는 학교도 가지 않게 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인생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이런 그를 살려내기 위해서

 먼저 습관적으로 하는

 한숨을 멈추게 하고

 늘 어깨를 펴고 살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웃게 했지요.
우울증 체험을 위해 스스로

우울증에 걸렸던 이 교수는 결국

제자들의 치료방법으로 인해서

간신히 치료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울증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치료를 거부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소중한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 안에서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구원의 선물을 주십니다.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의 구원이 가능해졌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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