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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아르메니아 규므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6월 25일 토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1 조회수1,272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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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6625일 토요일 [연중 제12주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1독서 : 애가 2,2.10-14.18-19

화답송 : 시편 74(73),1-2.3-4.5-7.20-21(◎ 19)

복음 : 마태오 복음 8,5-17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7390&gomonth=2016-06-25&missatype=DA

       (*교황님 강론 당일 독서 말씀은 루카 복음과 이야사서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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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메니아 규므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at-mass-in-gyumri-armenia

 

2016-06-25 바티칸 라디오 (Vatican Radio)

 

교황은 토요일 아르메니아 규므리(Gyumri, Armenia)의 거룩한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던 1988년 대지진이 초래한 끔찍한 재난을 상기시키고 모든 이를 위해 다시 세우신데 대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강론에서 교황은 우리가 지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우고 다시 세울 수 있는세가지 단단한 토대를 제시했습니다.

 

그 첫 번째 토대는, 교황이 말하기를, “기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선택했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민족의 기억은 아르메니아 사람들처럼 또한 간직해야 합니다. 교황이 덧붙여 말했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마주할 때조차도”, 교황이 강조하기를, 하느님께서 복음에 대한 당신의 진실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피의 대가까지 치르고 하느님의 사랑이 목숨 그 자체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증언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십니다.”

믿음은 교황 성하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우는 두 번째 토대입니다. 그러나 교황은 경고했습니다. “언제나 믿음의 빛을 흐릿하게 하는 위험이 존재하고 믿음을 과거에서 온 어떤 것으로, 중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 작게 만들어 버리는 유혹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세 번째 토대는 교황이 덧붙이기를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일치의 다리를 만들고 우리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면서 통공의 길을 세우고 복원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다음은 아르메니아 규므리(Gyumri, Armenia)에서 봉헌된 거룩한 미사의 프로치스코 교황의 강론 영어 번역문 전문이니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옛 폐허들을 복구하고 오랫동안 황폐한 곳들을 다시 일으키리라. 폐허가 된 도시들, 대대로 황폐한 곳들을 새로 세우리라”(이사야서 6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장소에 우리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지나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진의 지독한 역경 후에 우리는 다시 세워진 모든 것들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려고 오늘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궁금해할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 안에서 무엇을 세우라고 하고 계실까,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하게는 무엇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우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실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나는 우리가 지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세우고 재건할 수 있는 튼튼힌 토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토대는 기억입니다. 우리가 간청할 수 있는 한가지 은총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은총입니다. ,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상기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 그분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기억하십니다(루카 복음 1, 72).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위대한 일들이 우리의 인격적인 그분과의 러브스토리 안에서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 안에서 틀림없이 귀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또 다른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민족의 기억입니다. 민족들은 개인들과 같이 하나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민족들의 기억은 아주 오래되었고 소중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과거의 현인들과 성인들의 목소리를 울립니다. 당신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당신의 알파벳을 창조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신의 노래들은 당신 역사의 고통과 기쁨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당신이 이 모든 것들을 명심할 때 당신은 명료하게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엄청난 역경에 직면했을 때조차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찾아 오셨다는 오늘의 복음 말씀 안에서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루카 복음 1,68 참조 ) 그분께서는 복음에 대한 당신의 진실함, 당신 믿음의 첫 번째 열매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하느님의 사랑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증언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셨습니다.(시편 63,4 참조). 그리스도 믿음이 어떻게 하느님 백성의 삶의 호흡이 되었고 역사적인 기억의 심장이 되었는지 감사와 함께 기억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믿음은 또한 당신 미래의 희망이며 삶의 여정을 밝히는 빛입니다. 믿음은 내가 말하고 싶은 두 번째 토대입니다. 항상 믿음의 빛을 흐리게 하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서 온 어떤 것인 것처럼 믿음을 작게 만들려고 하는 유혹입니다. 믿음은 중요한 어떤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세대에 속한 어떤 것인 듯, 마치 믿음은 박물관에 보관되는 예쁘게게 빛나는 책인 것처럼 믿음을 줄어들게 하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일단 역사의 기록 보관소 안에 잠겨 버리면 믿음은 그 변모되는 힘과 그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잃고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열려 있음을 잃어 버립니다. 믿음은 그러나 예수님과의 생명을 주는 만남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며, 그분의 자비가 우리 삶의 모든 상황에서 빛나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에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을 새롭게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읽고 고요한 기도 안에서 우리 마음을 그분의 사랑에 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자애와 우리의 만남이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슬픔보다 위대한 기쁨, 고통조차 견디도록 하고 결국 평화가 되는 기쁨. 우리 삶을 새롭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놀라움에 열리도록 하고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준비하고 주님과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을 더 가까이 따르라고 부르시고 또한 우리의 삶을 그분께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주라고 부르시는 일이 일어 납니다. 그분께서 물으실 때 ?그리고 나는 이것을 특히 여러분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분께 말하세요 (Yes)!” 그분은 우리를 아시고 그분께서는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공포와 교만에서 해방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내뿜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당신의 위대한 선교 역사를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와 사회가 이 어려운 시대에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비의 시대입니다.

 

기억과 믿음 다음에 세 번째 토대는 자비로운 사랑입니다. 예수님 제자의 삶이 이 반석에,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받는 사랑의 반석에 기반합니다. 자선의 수련 속에서 교회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나고 아름다워집니다. 구체적인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방문 카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기 때문에(요한 복음 13,35 참조), 우리 자신을 드러내는 어떤 다른 길은 잘못 이끌 수 있고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에 앞서 통공의 길을 세우고 재건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통합의 다리를 만들고 우리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일하는 길을 세우고 재건하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서로 존중함으로써 대화의 영으로 협력하면서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능한 유일한 경쟁은 위대한 사랑을 누가 주시는지!”를 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언제나 모범이 되도록 해 주소서. ((JOHN PAUL II, Homily, 27 September 2001: Insegnamenti XXIV/2 [2001], 478).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성령이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부서진 마음을 싸매주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용감하게 자비롭게 돌보는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든 살고 계십니다. 우리는 얼마나 이것이 필요한지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지치거나 역경에 좌절하도록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 오히려 봉사할 수 있고 열려 있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선한 뜻을 가진 남자들과 여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단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움이 필요한 그들의 형제 자매들을 도와 줍니다. 우리는 더 위대한 정의 사회가 필요합니다. 그곳에서는 각 개인이 고귀한 삶을 이끌 수 있고 다른 무엇보다 공정하게 그의 또는 그녀의 일에 대해 정당한 보수를 지급합니다.

 

이 모든 같은 것을 우리는 자신에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모든 것에서 잘못과 오류들을 보는데 어떻게 우리가 자비로와질 수 있을까. 나는 구체적인 한 사람의 모범, 신성한 자비의 위대한 선구자, 우리가 그를 보편교회의 박사로 삼음으로써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를 내가 바라는 그분에게 간청하고 싶습니다. 아르메니아의 말씀이자 목소리인 바로 나렉의 성 그레고리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박혀 있는 비참함의 깊이를 다 헤아리는 능력에서 그와 같은 사람, 능력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은사를 주시는 분, 선함의 근원위로의 목소리, 평안함의 소식, 기쁨에 찬 박동,,, 진심 어린 그리고 눈물로 가득 찬 신뢰의 기도, 비할 데 없는 연민, 지치지 않는 자비구원의 키스(애가 3,1 )이신 주님께 진심 어리고 눈물로 가득 찬 기도를 올림으로써 언제나 하느님의 자비와 인간의 약함의 균형을 이루었습다. 그는 하느님 자비의 빛이 결코 분노의 그늘로 어두워지지 않는다(ibid 16,1)”는 것을 확신합니다. 나렉의 그레고리는 삶의 스승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추락과 우리를 다치게 한 부상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기적이지 말아야 하고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가까이 계시고 사랑하시고 선하신 하느님(ibid 17,2)”, “죄의 사슬을 불사르며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ibid 16,2)” 하느님께 주님께 바치는 신뢰와 진실함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성 그레고리의 말씀 안에서 나는 지금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의 실패하지 않은 사랑의 선물을 간청하고 싶습니다. 성령이시여, “강하신 보호자, 전구자 그리고 평화를 이루시는 분,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당신께 올립니다자애와 선

한 일들 속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소서자비 그 자체이신 당신이여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 우리 하느님. 당신의 위대하신 자비에 따라” (Hymn of Pentecost)

 

 (바티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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