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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3 조회수1,36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7월 3일

연중 제14주일

제1독서 이사 66,10-14ㄷ

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이들아,

모두 그와 께 기뻐하고

그를 두고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 때문에

애도하던 이들아,

모두 그와 함께

크게 기뻐하여라.
11 너희가
 그 위로의 품에서

 젖을 빨아 배부르리라.

너희가 그 영광스러운

가슴에서 젖을

먹어 흡족해지리라.
1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13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 마음은 기뻐하고,

너희 뼈마디들은

새 풀처럼 싱싱해지리라.

그리고 주님의 종들에게는

그분의 손길이 드러나리라.

제2독서 갈라 6,14-18

형제 여러분,

14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16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
17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예수님의 낙인을

내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18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0,1-12.17-20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17 일흔두 제자가 기뻐하며

돌아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19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인터넷을 통해 ‘없다’

시리즈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0대 ‘철’이 없다.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돈’이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낙’이 없다

. 70대 ‘이’가 없다.

80대 ‘처’가 없다.

90대 ‘시간’이 없다.

100대 ‘다 필요’ 없다.
마지막 100대에서 느끼게 되는

‘다 필요 없다.’ 라는 말에서

 큰 공감을 갖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면서 없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불만이 극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때로는 범죄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또한 나의 빈자리들을 채워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이

어떤 필요를 갖게 될까요?

결국은 ‘다 필요 없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곁으로 가게 될 때

과연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올 때 빈 몸으로 왔듯이,

다시 주님 곁으로 가게 될 때에도

빈 몸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지막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가지고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인지

계속해서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결국은 다 필요 없는데 말이지요.
아주 돈 많은 부자가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부자인지를

깨닫게 해주려고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이틀을 보냈지요.

돌아오는 길에 아들에게 “어떠니?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겠지?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해볼래?”

라고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개 한 마리뿐인데,

이들은 커다란 개가 세 마리나 있어요.

우리 집 마당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그 큰 개울이 다 수영장이에요.

우리는 조그마한 땅 안에 사는데,

이들은 넓은 들에서 살고 있어요.

우리는 직원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이들은 서로 도우며 살고 있어요.

우리는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들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아버지는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했었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불행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만 주목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래서 계속 무엇인가를 채워야

한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현 상황을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지 말라고

아예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까지 하시지요.

제자들의 능력과 재주가

그리 뛰어나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주님 아십니까?

그렇다면 더 많은 것들을 채워서

 파견하셔야 할 것 같은데

아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없게끔 만드십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에 세상의 것들은

다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가지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다보니

이것 역시 필요 없는 것임을,

 그래서 이것 역시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신용카드보다 부모를

더 존경하던 시절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로버트 오벤)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장마래요.

정리하기.

어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음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매일 하나씩 소유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매일

하나씩 포기하면 일 년이면

365개를 내려놓게 될 것이고,

 그만큼 자신의 물건들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매일 하나씩을

다른 이들에게 주면서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했습니다.

 일 년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많은 물건들이 정리될 것 같지요?

그런데 일 년 전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더랍니다.

분명히 매일 매일 자신의

 물건들을 남에게 주었는데,

여전히 자신의 집에는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또 필요한

것들로 채웠기 때문입니다.
저도 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하나씩 정리를 해보려고요.

그리고 만약 무엇인가를

하나 채우게 될 때에는

 두 개를 비우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야 언젠가

주님 곁으로 갈 때 홀가분하고

가벼운 마음이 되지 않을까요?

많은 것들을 채우게 해달라는 바람을

계속 외쳤던 것은 아닐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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