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전례’] 팥빙수의 팥인 ‘파스카 신비’(전례에서의 파스카 신비) 더운 여름에 떠오르는 간식 중에 빙수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면서 ‘젤라또’라는 아이스크림이 있기는 했지만, 한국의 빙수처럼 속부터 겉까지 시원하게 하는 짜릿함은 덜합니다. 요즈음은 아주 다양한 종류의 빙수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빙수의 원조는 팥빙수입니다. 빙수에 팥이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을 겁니다. 빙수의 팥, 찐빵의 앙꼬와 같이 전례에 ‘파스카 신비’가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이 파스카 신비는 하느님의 이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계획되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에서 시작하고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 구원!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정말 구원받았나?라는 질문이 불현듯 떠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확신은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필요한 부분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의문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한복음사가는 이렇게 확인을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또한 교회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실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성부께서는 세상의 구원과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성자와 성령을 주심으로써 ‘당신 뜻의 신비’를 실현하신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이다. 이 신비는 지혜롭게 정해진 계획에 따라 역사 안에서 계시되고 실현되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66항). 주님의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는 전례! 하느님의 뜻과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께 잉태되시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은 참으로 인간이 되십니다. 이러한 육화의 신비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실현하는 ‘파스카 신비’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고 하느님께 완전한 영광을 드리는 강생하신 말씀의 구원경륜은 “구약의 백성 안에서 하느님의 위업으로 준비되었으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특히 당신의 복된 수난과 저승에서 살아나신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의 파스카 신비, 곧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부활로 생명을 되찾아 주신’ 그 신비를 통하여 성취”(가톨릭교회 교리서, 1067항)하셨습니다. 교회가 전례를 행하는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가톨릭교회 교리서, 1066항)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라”(1코린 11,24)하신 말씀에서 ‘기억’해야 하는 내용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임을 확신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성사들의 예형! 파스카 신비에서 수난은 교회의 성사설립의 기초가 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요한복음사가는 현장감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요한 19,34 참조). 교회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흘러나온 피와 물이 “새로운 생명의 성사들인 세례와 성체성사의 예형”(가톨릭교회 교리서, 1225항)이라고 믿고, 그때부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요한 3,5) 새로 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파스카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세례의 샘을 열어 주셨고, 예루살렘에서 당신께서 겪으실 수난을, 받아야 할 “세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날에 자신들을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 10,38). 예수님의 부활 영광에 참여하려면, 수난의 세례를 견디고, 자신이 죽고, 하느님의 자녀로 부활해야 함을 말씀하셨지만, 당시의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파스카의 신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성체성사! 파스카 신비의 절정인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바로 교회에 의해서 이 땅에서 계속해서 드려지고 있고, 그분의 유일한 희생 제사를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일어나는 사건으로 현재화하고 봉헌합니다. 이 사명을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하여 행하라는 지상명령(至上命令)으로 여겼습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최후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전례헌장, 47항). 교회가 봉헌하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영원히 십자가 위에서 드리신 희생 제사는 언제나 현재에 일어나는 사건이 됩니다(히브 7,25-27 참조).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는 것이기에 희생 제사이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의 예수님의 성찬 제정 말씀에서 그 성격이 잘 나타납니다.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인 죽음은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파스카! 죽음의 기초에는 예외 없이 맞이해야 한다는 ‘보편성’과 피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불가피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삶의 차원인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례를 받아 파스카 신비의 첫 발을 디딘 그리스도인들은 죽을 때도 새로운 삶이라는 희망을 지니고 주님께 자신의 영혼을 맡깁니다. 그래서 장례 미사에서 사용되는 감사송에서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 전례주년에 관한 자의 교서에서 “파스카 신비의 거행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 가운데 가장 중요하며, 그 거행은 날과 주간과 한 해의 흐름을 통하여 펼쳐진다”고 말씀하시며 전례 주년 안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 죽음을 없애시고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 생명을 되찾아 주신 주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은 전례주년 전체의 정점이기에,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파스카 성삼일’ 전례 참석을 강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구현한 주님의 파스카 신비는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 특히 성사들과 전례주년을 통해서 현재의 사건이 되도록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분을 닮도록 노력하여, 그리스도인이기에 겪는 고난을 그분의 수난에 결합시켜, 그분과 함께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6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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