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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시기를!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5 조회수1,47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73/주일복음말씀묵상(2독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시기를! (갈라6,14-18)

 

 

구원에 이르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나 세상적 조건에 따르는 결과로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의한 것이므로 결국 십자가외에는 그 어느 것도 자랑할 만한 가치가 없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도 바오로는 이처럼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인 삶의 모습을 자신의 전 생애 가운데 나타내며 살았다. 오직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이란 자신이 그 어떤 환경에 처한다고 해도 다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이다!

우리도 과연 이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갈라6,14절은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말한다.

 

바오로가 자기의 자랑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음을 선언함으로써 앞의 6,12-13절의 바오로의 대적자들(유대주의자들)과 생생한 대조를 이룬다. 유대주의자들에게 십자가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으나 바오로에게는 영광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육체를 높였고, 그는 구세주를 높였다.

 

십자가는 바오로가 자신과 동일시했던 그리스도의 속죄를 말하는데(2,20),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바오로에 대하여, 그는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다! 바오로는 세상을 그 모든 유혹과 죄성과 인간적인 노력의 종교들과 더불어 떨쳐버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여겼다!

 

15절은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세상에 대한 믿는 이의 새로운 지위를 감안할 때, 어떠한 종교적 상징의 존재 유무도 구원의 방도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5,6).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만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2코린5,17)!

 

16절은 이 법칙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내리기를 빕니다.”라고 말한다.

이 법칙(규례), 곧 믿음만을 통한 은총의 구원의 메시지를 따라 사는 자들에게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평화와 자비(긍휼)가 임한다! 이 축복은 믿는 갈라티아 사람들과 믿는 유대인들에게 선포되었다. 특히 그리스도께 돌아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그의 깊은 사랑과 관심을 표명했다!

 

17절은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 몸에 예수님의 낙인(흔적)이 찍혀 있기 때문입니다.”(원문 참조)라도 말한다.

사도로서의 바오로의 소명과 그가 전한 메시지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심하게 도전받았다! 그는 그러한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면서 자기의 대적들에 대한 마지막 증거로 그의 몸에 있는 예수의 흔적을 제시한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수많은 핍박들로 말미암은 그의 몸의 상처들을 언급했는데, 이는 그것들이 그가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흔적을 자기 몸에 갖고 사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여기서 흔적(그리스어 스티그마)이란 말은 주인의 소유권을 말하며, 노예들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몸에 불도장(화인)을 찍었을 때 생기는 상처(흉터)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의 종인 바오로에게 찍힌 그 낙인은 그가 주님을 신실하게 섬길 때 육체에 받은 상처 자국들이었다(2코린11,23-27). 바오로는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된 종으로서 언제나 주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더 굳건한 믿음의 삶을 유지하였다!

 

영적으로 그 낙인은 그가 살았던 생활의 특징들, 곧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것과 같은 생활의 특징들을 상징한다! 그러한 생활은 지속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며(요한12,24),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요한7,18),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느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다(필리2,8).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본을 따르며 낙인, 곧 그분의 생활의 특징을 지녔다. 이점에서 사도는 유대주의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18절은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사도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 안에 내주하시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과 함께 서신을 마무리한다. 또한 그는 그들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바오로서신들 전체를 통해 독특한 방식이다.

 

여기서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의 거듭난 영이다!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의 혼, 곧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지와 함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은총이 우리의 영과 함께 함을 명백하게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영의 기능은 하느님과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성령에 의하여 거듭난 우리 사람의 영을 잘 모르고 있다!

<이 부분의 이해를 위하여 http://cafe.daum.net/yoondaniel 영적성장과 영적인 사람을 참고하시기를!>

 

예를 들면, 가령 전기가 당신 가정에 설치되었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 전기를 켜기 위해 스위치를 사용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스위치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른다면 전기의 혜택을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는 이미 하늘에 속한 전기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 사람의 영은 전기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스위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곧 하늘에 속한 전기는 스위치인 우리의 영과 함께 한다!

 

히브4,16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총을 얻기 위하여 은총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원문 참조)고 말한다. 은총의 보좌는 하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 있다! 나는 체험에서 내가 나의 영으로 돌이켜 주 예수님!” 혹은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즉시 은총의 보좌가 나의 영 안에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돌이켜 주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며 은총의 보좌에 나아갈 때마다 주님을 보좌에 앉혀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 안에서 머리가 되시고 왕이 되시고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가끔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분께 기꺼이 보좌를 내어드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이 왕이심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그분보다 높여 보좌에 앉힌다! 그러므로 언제나 패배를 맛보게 된다!

 

우리는 영으로 돌이켜 영 안에 머물 때, 주님을 머리와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보좌에 앉혀야 한다! 그럴 때 생명수의 강이 보좌로부터 흘러나와 우리에게 공급될 것이다(묵시22,1-2). 이럴 때 우리는 은총을 받고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서신에 흐르는 바오로의 설득력있고 부드러운 호소를 갈라티아 사람들이 어찌 저버릴 수 있었겠는가!

알렐루야!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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