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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6 조회수1,55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독서 호세 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복음 마태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매 한 마리가

사냥꾼에게 잡혔습니다.

사냥꾼은 마당 한가운데 말뚝을

 박아 매를 매어두었지요.

매는 하늘로 날아가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밧줄의 길이 이상으로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땅으로

곤두박질치곤 했지요.
오랜 시간이 흘러서 밧줄은

 저절로 끊어졌지요.

하지만 매는 이제 날아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날아봐야 또 떨어질 텐데 뭐…….’

라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경험 한 가지가 떠올려집니다.
제가 중학생 때에

체력장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종목 중에서 제일

자신 없는 것이 바로 ‘턱걸이’였지요.

이상하게도 턱걸이를

 단 한 번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 턱걸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친구가 “이거 너니까

가르쳐주는 거다. 배치기라는 것을

하면 턱걸이를 많이 할 수 있어.”라면서

 소위 배치기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즉, 힘을 주어 턱을 철봉 위로 끌어올릴 때

배를 ‘탕’치면서 탄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해 저는 20번

이상을 해서 만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제가 불과

일주일 만에 20번 이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배치기라는 요령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배치기’

역시 팔 힘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요령을 통해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없게 만드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의

약간의 자극만 있을 수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무기력감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런 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제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아서 스스로 할 수 없다며

주님의 길을 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통해 자극을 받고 변화되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제자들을 파견할 때에도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세상의 힘듦으로 무기력감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통해서만이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으며,

그리고 이제는 하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만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길이 너무 실없이

끝나 버린다고 허탈해할 필요는 없어.

방향만 바꾸면 여기가 또 출발이잖아.

(영화 ‘가을로’ 중에서)

어느새 이렇게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네요.

우리의 기억은 정확할까?

1979년 8월,

  천주교회 신부님인

피가노는 무장 강도 혐의로

재판 중이었습니다.

일곱 명의 목격자들이

이 신부님을 지목했고,

많은 피해자 역시 자기를 턴

강도가 이 신부님과

똑같다고 진술했습니다.

신부님이 자신의 무죄를

아무리 주장해도 믿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신부님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점 더 범인은 신부님으로

결정이 되어갈 때,

진범이 잡혀서 자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었습니다

. 이 진범과 신부님은 생김새부터

 아주 다른 것입니다.

당시 신부님은 53세의

 대머리 중년이었지만

 진범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으며

39세에 불과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바로 우리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스스로에 대해 ‘할 수 없다’면서

 낮추는 판단 역시 잘못입니다.

그 판단 역시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이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제대로 기억도 하지 못하는 우리,

그렇기 때문에 늘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도

크게 쓰시는 주님이십니다.

귀여운 인형과 맛있는 빵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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