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07)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7 조회수1,221 추천수8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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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독서 호세 11,1-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2 그러나 내가 부를수록

그들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들은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워 올렸다.
3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4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9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복음 마태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한 임금이 큰 잔치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이런 제안을 하지요.
“음식은 내가 낼 테니,

 참석자들은 제각기 포도주를

 한 병씩 가져오게.

그리고 가져온 포도주를

술독에 부어서

 함께 나눠 마십시다.”
잔칫날, 참석자들은 입장하면서

입구에 놓여 있는 술독에 자기가

 가져온 포도주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되면서,

 포도주를 잔에 따라 마시다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쎄 술독에 들어있어야 할

포도주가 모두 물인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된 것일까요?

혹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께서 반대로 포도주를 물로

만드신 기적을 행하신 것일까요?

당연히 아니지요. 원인은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 한 사람쯤 술 대신

 물을 가지고 와도 모르려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들로 인해서 행하는

모습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 하나쯤이야 괜찮다는

생각으로 과속과 신호위반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거리에 담배꽁초나 휴지를

 슬그머니 버려서 길을 더럽힙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서 엉뚱한

사람이 당선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이 사회에 또 다른

 혼란을 가져온 경우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나 하나부터’라는 생각은

 세상을 바꿀 여지를 만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라고 하십니다.

 대단한 능력을 주신 것이지요.

이런 능력을 받으면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에 이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라고 하시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주 그리고 심지어 물질적인

그 모든 것들도

거저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저 주라는 말씀이지요.
이해는 되지만 실천하기가

참으로 힘든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지요. 그렇게 거저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눈치 보는 것입니다.

살짝 보니 그들도 망설이면서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베풀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나라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나 역시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으로 거저 주지 않는

모습을 취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주님께서 만약 주시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주님 덕분에

 거저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거저 받은 것을

이웃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이제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핑계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에

그만두고 싶던 일도

 계속하게 된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가 끊어질 뻔한

관계를 이어 놓는다.

(조정민)

성지에서 축일자에게 주는 선물이랍니다.

실패는 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은 것.

(사리 블레이클리, ‘그곳에 가는 길’에서)

어렸을 때, 아버지는

실패를 경험해 보라고 하셨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이번 주에는 무엇을 실패했니?”

라고 물으셨다.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면

아버지는 실망하셨다.

아버지 가르침 덕분에,

‘실패란 결과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게 됐다.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를 못하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성취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기력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것을 시도하고,

그중 몇 개를

성공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성취하고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요즘 경영 화두가 ‘

작게, 빨리 실패하라’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패를 마음껏

경험해봐야 하겠습니다.

맛있어 보이죠?

어제 모임에서 먹었던 술 안주랍니다. ㅋㅋㅋ?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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