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7.8 금/ 제자직의 본질인 고통의 수용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07 조회수1,047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14주 금 마태 10,16-23(16.7.8)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Coming persecutions





제자직의 본질인 고통의 수용

오늘 복음은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박해, 시련, 고통, 재판, 미움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10,21). 이러한 일은 사람들이 ‘올곧지 않아’(미카 7,6)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분의 정의와 진리를 거부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기쁠 때보다는 고통스러울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암담한 미래의 벽 앞에 좌절하는 젊은이들, 기본적인 생계유지마저 힘든 비정규직 노동자들, 늘어만 가는 가계 부채 앞에 한숨 쉬는 수많은 서민들, 고독사를 택하는 노인층 등 고통과 시련은 그렇게 호흡처럼 우리들 가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 때문에 더한 고통과 박해를 받게 된다니 참 힘든 삶입니다.

어떻게 고통 가운데서 예수님을 따라야 할까요? 먼저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은 힘을 모아 저항하고 극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고통도 있습니다. 그런 고통은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콜로 1,24)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고통 앞에 무조건 인내해야 한다거나 고통을 하느님의 벌로 생각한다거나 정화의 과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막연히 고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칠 때에는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고통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함께 지려는 의지와 마음이며, 구체적으로 함께 나누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삶에서 십자가의 수난을 수용하지 않은 채 부활의 영광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고통은 피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끝까지 참아내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며 서로 나눌 때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박해 상황을 주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순박함과 지혜로움, 신뢰와 인내, 곧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10,16).

고통은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이요, 고통의 수용은 예수님의 제자직의 본질입니다. 이제 우리를 위하여 갖은 박해와 멸시를 받으시고 고통 중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의 이 무거운 짐’을 그분께로 가지고 갑시다. 보이지 않지만 참으로 고귀한 예수를 따르는 삶에 힘과 용기를 모아 앞만 보며 그분께로 달려갑시다.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겪는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우리를 영원 생명에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이제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듣고 용기를 냅시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

우리 모두 삶이 고달프고 나를 속일지라도 주님 안에 머물고 그분만 차지할 수 있다면 고통은 오히려 기쁨이 될 것임을 믿어야겠습니다. 오늘도 일상에서 하느님의 선과 정의를 위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겪어내는 고통의 씨앗에 숨겨져 있는 참 행복의 보화를 알아보는 기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