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5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0 조회수1,394 추천수8 반대(0)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주일에 미사를 공지하니, 다른 곳에서 오신 교우들도 함께 미사를 참례하였습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인데, 주님의 성체 앞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맙고, 기뻤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두 가지를 경험하였습니다. 천둥과 번개로 인해 머무는 곳이 정전이 되었습니다. 불과 하루였지만 전기 없는 생활은 많이 불편하였습니다. 전기가 없으니 어둠이었고,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은 기능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미사를 봉헌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교우들은 초를 밝히고, 제 방으로 오셨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촛불 앞에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제대를 밝히는 초가 그렇게 밝은 줄 미처 몰랐습니다. 촛불을 들고 오시는 교우 분들의 모습은 천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모든 것들이 다시금 밝아졌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면 이 세상의 모든 전기를 합한 것보다 더 밝은 빛 속에서 살 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전이 되면서 실수로 스마트폰을 물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스마트폰이 없으니 불편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세상과 소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스마트폰에 의지하면서 많은 것들을 망각하고 지냈음을 알았습니다. 84-0684는 중학교 때 집 전화번호입니다. 3-7397은 전주 고모부 댁 전화번호였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녔는데, 스마트폰에 의지하면서 생각나는 전화번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은 편리하고, 유익한 것이지만 스마트폰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잊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깊은 성찰을 하게하는 독서의 습관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대화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천국을 보았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신경외과 의사인 저자는 물질로 이루어진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우리의 뇌가 우리의 의식, 마음, 정신, 생각을 조절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많은 수술을 통해서 의식을 잃어가는 사람,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치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의 은 하나의 하드웨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의 의식을 조절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이 신호를 받아야 기능을 할 수 있듯이, 우리의 뇌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받는 수신기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우리의 인식과 과학의 논리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우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온 우주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사랑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사랑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굳이 임사체험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사랑이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통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저 멀리 여행을 가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입과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한 삶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오늘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 해 주십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가난하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병든 이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 이것이 자비를 베푸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오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바로 그런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저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여름날, 성당에 오셔서 문을 닫고, 하수구의 오물을 치우고, 성모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하시던 형제님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방앗간을 하시면서 형편이 어려우신 어르신들에게 떡을 나누어주던 형제님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였지만 신앙인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를 해 주신 형제님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김치를 해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시던 자매님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신장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어 주셨던 자매님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희망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좋겠습니다.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은 음식이 입맛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건강에 좋은 것처럼, 조금은 재미없고, 눈에 차지 않는 것 같지만 평화방송, 가톨릭신문, 평화신문은 우리의 영적인 갈증을 풀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의 빛으로 사는 것은 거창한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한주라도 교회의 소식을 가까이 하고, 영적인 서적을 읽어보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신앙의 빛은 우리의 어둠을 밝게 비추어 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치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가서 그대도 그렇게 하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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