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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조심 하여라!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2 조회수1,13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711()/주일복음말씀묵상/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조심 하여라!

(마태10,24-33; 루카12,1-9)

 

 

마태10,24-33절은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주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파송하시며, 또한 다가오는 박해를 예고하시면서 오늘 본문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 하신다. 곧 예수님에 대한 신실함 여부가 제자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경고하신다!

 

반면에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은 루카복음 12,1-9절은 특히 바리사이 등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에 주의해야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루카복음 12, 11장의 악한 세대에게서 배척당하시고,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시면서, 오늘 본문의 내용인 바리사이 등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조심하라는 부분에 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느낀다!

 

사실 종교보다 위선이 편만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루카12,1). 오늘날 바리사이들과 율법 교사들은 누구인가? 종교지도자들이 아닌가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밖의 탄압보다는 신성한 하느님 말씀을 자기신념이나 자기 정의에 맞추어 왜곡하는 인본주의 이단과 생명이 없는 의례 의식화된 내부적인 위선에 있지 않는가? 오늘날의 믿는 이들은 바깥세상은 물론 오히려 교회 내부의 이단과 부패와 분열의 누룩으로 더 큰 위협을 받고 있다!

 

마태10,24절은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말한다. 이것은 특별히 고통을 언급한다. 제자와 스승, 종과 주인의 예를 들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승에게 닥친 것보다 다른 또는 더 심한 것은 그들에게 닥칠 수도 없고 닥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가혹하지만 냉철하고도 실제적인 위로이다!

 

25절은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고 말한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료하며 권세 있는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을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라고 노골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하였다(9,34)! 그들이 예수님(집 주인)을 그렇게 모함했을진대, 그의 일꾼들(제자들과 믿는 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가장 모독적인 베엘제불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가장 강하게 하늘의 왕을 반대하며 배척했다! 주님은 극도로 모욕을 당하셨다!

오늘날도 사정도 똑 같지 않을까?

가령 어떤 신실한 믿는 이가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권세 있는 말씀을 한다는 소문이 난다고 가정해보자! 겉모습만 화려할 뿐 실재(reality)를 만지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이 그를 가만히 두겠는가?

교회가 소유한 온갖 정보매체들과 그들의 거대한 조직을 이용하여 우리 신학과 우리 교리와 우리 교회법과 다르지 않는가?’라고 인본주의적 시비를 걸면서, 틀림없이 작당하여 그에게 현대판 화형식을 거행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주님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할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데, 이는 주님께서 우리가 당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고통은 기껏해야 그분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베엘제불베엘은 똥파리 혹은 집을 의미하며, “제불은 왕 혹은 주인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베엘제불은 똥파리의 왕, 집의 왕, 또는 귀신들의 왕이라는 의미이다. 귀신들은 사람의 몸을 집 삼아서 사람의 몸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집의 왕으로서 사람의 몸을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히려 주님을 똥파리의 왕이라고 부르면서 그분을 욕했으며, 또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미치광이며 위험한 자라고 부른다.

 

이 부분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이 땅에서 우리를 잘 대우할 것을 기대해서도, 대우받아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오해받고 핍박받고 멸시받을 때마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을 대우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만일 그분과 같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26-27절은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더 용기 있게, 더 솔직하게 선포할 것을 권고하신다.

 

그렇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기 때문이다(히브4,12).

어두운 데에서 , 귀속말로,”곧 사도들이 주님의 곁에서 혹은 사적으로 받은 메시지를 두려움 없이 공공연하게 선포할 것인데(밝은 데에서, 지붕 위에서), 이는 그들의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들을 진실로 염려해 주시며,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실, 26-27절의 말씀이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선포하는나에게는 큰 힘이 된다! 언제 등불에 불을 켜야 하는가? 어둠 속에서 불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이 너무 짙다고 해서 등불이 쉬고 있어야 하는가?

날이 밝은 후에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느님은 우리가 진리를 알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진리를 밝혀야 한다! 우리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야 한다!

 

28절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고 말한다.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사단에 의해 사용되는 사람들이다! 사단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손상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하느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게헨나)에 넣어 멸망시킬 수 있으신 유일한 분이시다. 사도들은 오직 육체적인 몸만을 멸할 수 있는 종교 지도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종교 지도자들의 진정한 동기는 심판 때에 드러날 것이다(26).

이것은 오는 시대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의 심판 후 믿는 이들이 보상이나 형벌을 받을 때 일어날 것이다(2코린5,10; 묵시22,12).(28절의 영혼은 정확하게는 으로 번역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육체적 생명과 영적 생명의 궁극적인 주관자이신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29절은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분은 별 가치가 없는 참새의 죽음까지도 알고 계신다. 여기서한 닢은 원문에는한 앗사리온으로 최소의 비용을 의미하는일 전으로 번역할 수 있다.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의 의미는 다른 상대편이 개입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사람이나 혹은 마귀의 지시를 받는 귀신이 우리를 해치려할 때 우리 옆에 계신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비록 그분이 위대한 분이시지만 작은 것들을 관심하시기 때문에 조그만 일도 기억하신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은 또한 가장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다!

 

30-31절은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라고 말한다. 아버지 하느님은 또한 사람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아신다. 우리에 관하여 하느님이 관심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일은 없다! 우리는 작은 일에서조차도 하느님께서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행하고자 하시는 것에 관하여 애매하거나 막연하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게 된다!

 

32-33절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고 말한다.

 

이 말씀을 피상적으로 가볍게 넘기기 말라!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말은 입술로내가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정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무서운 박해가 있었을 때에는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자체가 그의 모든 명예와 재물과 심지어 생명까지도 버려야 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 전체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만일 입술로만 믿는다고 떠들면서 실제 생활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을 부인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사람 앞에서 그분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분으로부터 부인당할 것이다. 열두 사도들 중 오직 한 사람, 유다만이 이 후자의 경우에 속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28). 주님이 내 구주이심을 고백하고,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 “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시편116,10)고 한 고백처럼, 우리는 매순간 하느님 앞에서 고백적인 태도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도 늘 우리를 시인하시고 돌봐 주실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을 참조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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