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1)당신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3 조회수1,17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710/주일복음말씀묵상/ (1)당신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루카10,25-37)

 

 

요한3,16절은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내가 여섯 살 쯤, 그러니까 19506,25전쟁이 일어난 얼마 후,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어느 시골 광산촌에 개척교회가 세워지면서, 그 곳에 가면 과자도 주고, 고기국도 준다는 소문 때문에, 처음으로 어린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마침 그날은 크리스마스 전날의 행사 준비에 한창이었고, 성경 구절을 잘 외우는 어린이에게는 푸짐한 선물을 준다는 주일 교사의 유혹 때문에 성경말씀외우기 어린이 행사에 바로 신청하여 선수로 차출되었고, 내일 크리스마스 전날 행사를 위해 나에게 즉석에서 부과된 성경 암송 구절이 바로 요한복음 316절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그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인 줄을 우리는 모른다! 하느님 편에서는 사랑이고, 사람 편에서는 믿음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 편에서는 하느님 편에서와 같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여 독생자를 드렸으니 이는 하느님이 저를 신뢰하여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성경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한다(1요한4,10). 구원받는 조건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는 기초를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두고, 하느님께 드린 우리의 공로나 행위에 둔다면, 우리가 얻은 구원이 믿을 만한 것이 아님을 즉시 보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수시로 변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기록된 오늘 본문 루카10,25-37절을 보기로 하자! 10,25절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어떤 율법 교사가,” 여기서 이 사람의 직업은 잘못되었음을 본다!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그의 동기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온 목적도 잘못되었다!

 

스승님,”그의 지식도 옳지 않았다. 그는 주님을 잘못 알았고, 그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몰랐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그의 질문도 잘못 되었다. 이 율법 교사의 직업도 잘못 되었고, 동기도, 목적도, 주님에 대한 지식도 잘못되었으며, 그의 질문 또한 잘못되었다!

 

26절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곧 네가 율법 교사라면 율법에 무엇이 쓰여 졌는지 알 것이라는 뜻이다.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율법에 쓰여진 것을 사람들은 잘못 읽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중적으로 질문하신 것이다. 곧 율법에는 이렇게 말했고, 그는 이렇게 읽었다는 것이다!

 

2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는 율법을 잘 읽었다. 곧 율법서의 요점을 잘 알았다는 말이다. 여기서 원문상 목숨은 으로, 정신은 생각으로 번역되어야 정확하다.

 

25절에서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여기서 사람을 시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무엇을 물어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질문하는 반면에 남을 시험하는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지만 질문하는 것이다.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질문하는 것은 겸손한 문의이다. 그러나 알면서도 질문하는 것, 곧 시험은 자기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그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외울 수 있었다. 곧 율법의 총론은 사람이 영생을 얻으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누구든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영생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고 것과 마찬가지의 내용이 된다.

 

여기에 하나의 문제가 존재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처럼 진실되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그러한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물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결단코 한 사람도 없다!

 

진실로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을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이 율법 교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정확하게 보아야만 한다!

 

28절에서 예수님의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끝났다면, 사실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율법 교사가 자기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29절에서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다. 30절부터 주님은 누가 그의 이웃인지를 답변하신다! 30절부터 주님은 그에게 한 가지 이야기, 곧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익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30-37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제사장)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고정 관념화되어 있는 해석의 틀을 뛰어넘어 좀 더 깊게 묵상해보자! 그 당시 예루살렘에서 예리코(여리고)까지의 길은 강도와 도둑이 출몰하는 위험한 길이었다. 그러니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 상황이 실제였던 셈이다! 영적으로 해석할 때는 예루살렘은 평화를 의미하고, 예리코는 저주를 뜻한다. 그러니 이 사람은 평화의 장소에서 저주의 장소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 사람의 형편은 갈수록 내리막 길이었다! 이러한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났다. 게다가 한 강도가 아니라 한 떼의 강도들이 그의 모든 소유를 다 강탈해 갔으며 그의 옷을 벗기고, 곧 겉에 몸을 덮을 것이 없게 만들어 때려 거반 죽게 하여 그의 생명에 해를 입혔다.

 

성경에서 사람의 옷은 의 또는 그 사람의 자존심, 또는 그 사람의 행위를 뜻하고, 그 사람 자신은 그의 생명을 말한다. 그 사람의 자존심과 의는 강도의 일방적인 폭행으로 이미 박탈당하고 잃어버렸으며, 남아 있는 생명도 몸만 살아 있었으며, 영은 죽어 있어서 거의 죽은 사람이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사람이 바로 우리를 가리킴을 안다!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뱀의 시험을 받은 후, 곧 아담의 범죄 후에 인생의 노정에서 사람에게는 평안한 적이 없었고, 항상 마귀의 시험을 당하며, 결국 강도를 만난 사람처럼 우리의 외면적인 행위는 벌거벗김을 당했고 더욱이 속의 영은 죽어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기다려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한 사제(제사장)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길 반대방향으로 지나가 버렸다. 또한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사제와 레위인은 구약에서 주된 두 무리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율법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손에 있었다. 만일 사제와 레위인을 빼버린다면 율법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살아 있지 않고 거의 죽어 있고, 사탄에게 얽매여 있으며, 아무리 선한 일을 하려고 해도 도달할 수 없어 죄책감과 열등감에 젖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죄인은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사제(제사장)가 그에게 와서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사제는 27절의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면필히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말했을 것이다! 레위인도 그에게 와서 또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면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메시지였고, 이것이 거의 죽어 누워 있는 사람에게 사제와 레위인이 한 말이다!

 

네가 거의 죽었고, 옷은 잃었지만, 그러나 선을 행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의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의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사실에 있다!

 

만일 당신이 만난 사람이 매를 맞지 않았고 아직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람에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도 가능한 일이다. 만일 그가 아직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이 말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문제는 그가 예루살렘에 있지 않고 내리막길에 있으며 또한 거의 죽었다는 데 있다! 이러한 계명들은 그를 조금도 돕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늘의 문제는다하는문제가 아니라돕는문제임을 기억하라! 여기에 곧 죽어 가는 한 사람이 있다. 여기에 죄 중에 살면서 구원에 대한 어떤 방법도 없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죄인에게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그는 일생 동안 하느님을 사랑해 본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 사람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면, 그는 일생 동안 남의 것을 오히려 강탈했다고 말할 것이다! 사제와 레위인은 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갔다! 이것은 그들이 이러한 사람을 보고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들은 그 사람을 도울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을 보자 길 반대쪽으로 서둘러 그냥 지나갔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말씀은 당신이 영생을 얻도록 도와주는 말이 아니라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말이다!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을 들을 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이 이웃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상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탐내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등의 율법의 말씀은 그것이 실행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더러움과 당신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총론은 다름 아닌 야고보가 말한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야고1,23). 당신은 당신의 얼굴이 어떤지를 모르겠지만, 거울게 비추어 볼 때 곧 알게 된다.

본래 당신은 당신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당신에게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조차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알렐루야! 아멘.

 

<‘(2)당신은 선한 사마리아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계속됩니다!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을 참고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