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4 조회수1,43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7월 14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독서 이사 26,7-9.12.16-19

7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8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9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16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17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19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복음 마태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어떤 분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웬만하면 자그마한

배낭이라도 등에

짊어지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넘어질 때 배낭이

 안전벨트처럼 몸을

보호해 주기 때문이랍니다.

하긴 등산 갈 때에도 배낭이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배낭 덕분에 위험한 상황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공감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 배낭을 짊어지면 어떨까요?

편할까요? 불편할까요?

배낭 없이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불편한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배낭이 없어야 빠르고

편안하게 목적지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잘 맞춰서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갑니다.

그런데 평균 시속 120Km로

우리나라의 해안도로를

 이용해서 부산을 갑니다.

한편 다른 차는 평균 시속 100Km로

경부선을 이용해서 부산을 갑니다.

과연 어떤 차가 빠르게 도착할까요?

120Km의 차가 더 빠르지만,

100Km의 차가 먼저

도착할 것이 분명합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빠르고 편한 것이 아니라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내 삶의 목표를

향해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있어 보이는

많은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놀라운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면 정말로

좋을 것 같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죽은 이를 살리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법,

 배고픈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빵의 기적을 행하는 법 등…….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도대체 가르쳐 주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그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고 하십니다.

  도대체 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이 세상 안에서 무슨 쓸데가

있다고 배우라는 것일까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통해서만

하느님 나라에 똑바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낭을 짊어지는 약간의

 불편함을 통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것처럼,

온유함과 겸손함을 통해서는

  세상사는 불편함을 얻을 수 있지만

 안전하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주님의 멍에는 적당히 무거워서

그것을 멘 이들에게 오히려

힘을 북돋아 줍니다.

멍에라고도 할 수 있는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워서 반드시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할까, 하고

괴로울 땐

진실을 말하라.

(마크트웨인)

한참 자전거를 탈 때의 제 모습입니다.

지금은 도로만 타요. ㅋㅋ

성실과 열정

한 소년이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할머니, 형 그리고

두 명의 외삼촌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극심한

영양실조와 폐결핵을 앓고 있었고

정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언제나

‘성실’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훗날 소년은 불행한 상황들에

굴하지 않고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가난’과 ‘질병’을 극복했고

 삶의 아픈 상처들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44세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 사람의 이름은 프랑스

최고의 작가 '알베르 카뮈'입니다.
내 자신에게 불어 닥치는

불행한 상황들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지 말고 이겨낸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큰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이를 이겨내는 사람인가요?

 성실과 열정만 있다면 충분히

이겨서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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