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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말씀과 성체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시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7 조회수3,143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16주일


<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복음: 루카 10,38-42








 
 모스크바 화파 작, (1330 경)

 

< 말씀과 성체 중 하나만 선택하라시면? >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뭐 하나 부족함이 없이 반듯하여 뭇 남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던 한 여학생이 같은 과에 있는 남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 사연이야 알 수 없지만, 남학생은 공부도 겨우 낙제를 면한 수준에다가 특기하나 없고 그렇다고 물려받은 돈도 없고 졸업을 해도 취직이나 될까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여학생은 앞날이 창창 보장된 잘 나가는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그 남학생이 여자 꼬시는 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드디어 두 사람이 졸업을 하고 사람들은 잘난 여자가 못난 남자를 먹여 살릴 것이라 다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남학생은 오라는 데가 없어 이력서를 가방가득 채워가지고 다니는데, 여자는 서로 데려가겠다는 회사가 줄을 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단호하게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집안에서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낳고 키우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까운 사람 하나 남편 잘못 만나 버렸다고 혀를 쯧쯧 찼지만 여자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투자가치가 높고, 소중하고 보람된 일은 남편을 믿어주고 아이를 잘 키우는 일입니다. 여자에게 이 일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출처: 최용우]

 

만약 여자가 가정을 먹여 살리고 남편은 집에서 기죽어 살다가 외도를 하고 이에 자녀들마저 삐뚜로 나간다면 그 여자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고, 실제로 이런 일로 이무석 교수를 찾아와 상담을 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여인은 무엇이 중요한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야 만무하겠지만 주님께서 말씀이든 성체 든 하나만 선택하라시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가톨릭 신자라면 당연히 성체를 선택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말씀을 선택하겠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신교는 말씀을, 천주교는 성체를 중시하는 것을 모르느냐고 되묻는다면 저는 사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씀을 잃으면 성체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말씀으로 충만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성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을 집안에 모셔 들였습니다. 마리아가 모셔 들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집안에 모셔 들인다는 것은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르타는 여전히 예수님께 무엇을 해 드릴까만 생각하며 분주하게 일합니다. 이런 마르타에게 칭찬을 해 주셔도 괜찮으실 텐데 예수님은 그런 쓸모없는 염려와 걱정은 갔다버리고 마리아처럼 당신 발치에서 당신 말씀을 들으라고 초대하십니다. 마리아는 성체대신 말씀을 받아들여 칭찬을 받은 것이고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것이 유일한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 전에 어떤 성당에서 일어난 큰 사기극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분이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 엄청난 배당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신자들이 앞서 그 사람에게 돈을 투자하였는데 그 사람은 엄청나게 모인 돈을 들고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기를 친 사람은 새벽미사까지 포함해서 매일미사를 나오는 착실한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사기를 치기 위해 미사를 나왔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성체성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모셨지만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거룩한 성체는 그 성체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부모를 떠나 하란 삼촌 집으로 갑니다. 거기에서 삼촌 라반의 딸 라헬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라헬을 위해 7년간 일을 해 줍니다. 라반은 처음엔 그렇게 약속했지만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신방에 넣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야곱은 깜짝 놀라고 속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라반은 그곳 전통상 동상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가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그래서 7년을 더 일하게 되고 라헬을 사랑하게 된지 14년 만에 비로소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라헬은 요셉과 베냐민 두 아들을 낳고 죽습니다. 결국 요셉이 나머지 야곱의 가족을 살리게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맞습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말씀과 혼인하지 못하였기에 성체도 만나고 있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분이 참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말씀을 듣고 있지 않던 오늘 복음의 마르타와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며 성경말씀을 가슴 뜨겁게 설명해 주십니다. 그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주실 때, 그때서야 비로소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봅니다. 말씀의 전례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은 상태면 성찬의 전례가 사실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즉 성체를 만나기 위해 반드시 먼저 만나야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라헬과 혼인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먼저 혼인해야 하는 것이 레아인 것과 같습니다. 둘은 같은 자매로서 결국 야곱과 혼인하는 말씀과 성체이고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건너뛰고 성체를 바로 만날 수는 없게 되어있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성전에 봉사하러 가는 사제나, 예배드리러 가는 레위인이 실제로는 당신을 섬기는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십니다. 성당에 나와 성체를 영하지는 못할지라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진정 당신을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구원받을 사람이라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말씀이 채워지지 않은 성체는 텅 빈 것과 같습니다.

대전의 한 의사 부부가 개신교를 다니다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첫 영성체를 하는데 자매님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더라고 합니다. 남편이 창피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그 자매는 지금까지 성경말씀만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진정 그분의 살과 피를 실제로 영하게 됐는데 어떻게 눈물이 안 나와요? 내가 이상한 것인지, 아무렇지 않게 성체를 영하는 다른 신자들이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자매는 이미 말씀으로 충만해져 있기에 성체성사 때 눈물을 흘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건너뛰었던 사람이었다면 성체를 영하면서 그런 감동은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 노력이 없다면 성체는 그 노력의 결실로 만날 수 있는 말씀의 정점인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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