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18 조회수1,704 추천수7 반대(0)

조선시대 허균은 백성을 3부류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부류는 항민(恒民)입니다.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불의와 억압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삶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주일미사는 참례하지만 본당의 행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둘째부류는 원민(怨民)입니다. 잘못된 현실을 비판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만 더 이상의 변화를 추구하지는 않는 사람입니다. 마치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앗처럼 싹은 트지만 가시덤불에 막혀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비판은 하지만 대안이 없는 사람입니다.

셋째부류는 호민(豪民)입니다. 불의와 억압에 대해서 소리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목자는 양 냄새가 나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비록 상처를 입고 흙이 묻을지라도 세상을 보듬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터키에서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서, 쿠데타를 막았다고 합니다.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지켜낸 것입니다. 불의와 억압의 상황을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과감하게 거리로 나서서, 자신들의 주권을 지켜냈습니다. 터키의 시민들은 호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잡혀가셨을 때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불의와 억압의 상황을 외면하였습니다. 항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다락방에 숨어있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원망은 하였지만 행동하지 못하였습니다. 두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원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제 호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먼저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미카 예언자는 호민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이야기 하십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을 갔던 요나는 항민이었습니다.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이야기 했던 요나는 원민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회개할 것을 외쳤습니다. 요나는 이제 호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은 놀라운 기적이 아닙니다. 바로 호민의 모습으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산상설교는 바로 호민의 모습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입니다. ‘정의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느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여러분을 모욕하고 박해하며, 여러분을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큽니다. 사실 여러분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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