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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2 조회수1,30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7월 22일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독서 아가 3,1-4ㄴ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복음 요한 20,1-2.11-18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한 때 유행했던

CCM 성가가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라고 시작하는 노래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종교적인 노래이지만 일반 사람들도

이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스스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에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목적은 바로

우리에 대한 사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못 받아서 상처를 받고,

그 상처의 아픔으로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사랑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랑을 줄 수 있어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랑을 준 경험이 없으니

사랑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 이 사랑을 보여드릴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나의 이웃들을

향한 사랑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주는 사랑을 통해 받는 사랑을

더 크게 얻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져서 제자들을

찾아가 알렸고, 제자들과 함께

무덤에 가서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무덤 안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계속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했고 다시 한 번

무덤 안을 돌아보게 한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했습니다.

물론 그녀는 아직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직접 보고서도 이분이

 예수님인 줄을 모르고는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요.

정원지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는

서두르지 않고 친절하게 당신을

 알아갈 수 있도록 조금씩 드러내시지요.

사랑으로 다가오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당신의 큰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어떤 사랑으로

다가섰는지를 반성했으면 합니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을 힘들어해서

미사가 시작한 뒤에 성당에 들어가고,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성당 밖을

나서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것에 대한 사랑만을

 드러내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리고는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

참석하는 것으로 모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각종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내밀어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지도 또한 삶 안에서

느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그 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기쁘게 사랑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앞서가나 뒤에서 가나

관계 없다.

 내 인생에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

(기시미 이치로)

골고타의 '마리아 막달레나 경당'
다윗왕의 반지

(최천호)

어느 날, 다윗 왕이

반지가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말했다.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폐하.”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고

멋진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계속 생각했지만 좀처럼

다윗이 말한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민해도 적절한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아서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

솔로몬을 찾아갔다.
“왕자시여 다윗 왕께서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 어떤

 글귀를 적으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This will pass away, too.)
지혜서 '미드라쉬' 에 나오는

유태인들이

항상 즐겨 읽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유태인들은 나

치 학살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하지요.
지금 너무 힘들고 괴로워도

여러분들이 꿈꾼 행복한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시간은

분명히 지나갈 테니까요.

다윗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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