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3 조회수1,925 추천수14 반대(0)

며칠 전입니다.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시애틀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본 적이 없는 곳입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에서 시애틀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습니다. 자매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항공권도 보내 주고, 지낼 곳도 마련해 줄 테니 언제고 한번 오세요.’ 자매님은 제가 올리는 묵상 글을 읽으셨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위로를 얻었고, 만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2년쯤 뒤에, 안식년을 하게 되면 한번 가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삼 중용 23장이 떠오릅니다.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변하고, 변하면 감동을 주게 됩니다.’ 저의 글이, 멀리 있는 어르신에게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끔, 제 몸을 볼 때가 있습니다. 지우고 싶은 흉터도 있습니다. 줄이고 싶은 뱃살도 있습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빼고 싶은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모두 내 몸의 일부이고, 제 삶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와 함께 계속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삭제하고 싶은 기억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역사의 기억을 삭제하고 싶으신지요?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시간, 이념과 사상의 갈등으로 벌어진 폭력과 전쟁의 시간, 부끄러운 시간, 치욕의 시간, 분노와 미움의 시간들은 지워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잘못한 것은 잘못한 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죄의 역사의 또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 제자들의 배반, 박해와 순교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인류와 역사 앞에서 잘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고통과 박해의 시간들을 통해서,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통해서도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임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밀과 가라지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밭은 우리의 몸과 같습니다. 밀은 건강한 지체입니다. 가라지는 병들어 아픈 지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양의학에서 하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가라지를 제거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동양의학처럼 말씀을 하십니다. 지켜보면서 몸의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라고 하십니다. 건강한 지체들이 활력을 얻으면 건강하지 않은 지체들이 치유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밀과 가라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삼 시편의 기도를 묵상하게 됩니다.

주님,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시편 13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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