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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4 조회수3,80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7월 24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창세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제2독서 콜로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복음 루카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목숨을 스스로

끊어 버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아픔과 절망 그리고 후회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자신의

사명을 다 이루었다고

이제는 주님께서

자신을 데리고 가셔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긴 이런 이야기도 있지요.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어떤 스승님이 계셨습니다.

이 스승님께서는 늘 입버릇처럼

하루빨리 하늘 나라에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또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정말로 스승님이

죽기를 바라는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스승님이 술에 취해 침대에 누운 날

침대에 밧줄을 달아 조금씩 위로

올리면서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하늘 나라에 이제 데리고 가마.”라는

 소리가 나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승님은 곧바로 무릎을 꿇고는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아직은 말고요. 아직은 말고요.

아직은 말고요....”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사명이 미완성인 채로

죽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껏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육십 대에 돌아가셔도

 “아이고,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어.”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님의 나이

서른셋은 새파랗게 젊은

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도

 “너무 젊어서 돌아가셨어.”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사업을

완수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마쳐야 할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 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씁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사명을 이행하지 못하는,

그래서 후회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대화를 나눠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과의 대화라 할 수 있는

기도를 해야지만 자신의 사명을

알 수 있고 또 그 사명을

이행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이 기도의 방법을

 직접 가르쳐 주십니다.

바로 우리들이 잘 아는

주님의 기도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할 때 어떤 기도를

먼저 바쳤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해 주십시오.’

라고라고 말하는

나의 청원이 먼저였습니다.

그런데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보면,

먼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찬양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바람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도 ‘해주던지 말던지’라는

식이 아니라,

 ‘줄곧 졸라 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지요.

하느님 아버지를 먼저 만났기에

 굳은 믿음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줄곧 졸라 댈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바쳐야 할까요?

나의 기도를 반성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삶이란 무수히 많은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김영희)

이스라엘에 있는 '주님의 기도'

시험

신학교에 다닐 때,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시험만 없으면

이곳은 천국일 텐데…….’
정말로 모든 점에 있어서

만족스러운데 어려운 시험 때문에

살이 쪽쪽 빠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시험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습니까?

시험만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는

평가를 하는 수능,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취업시험,

 취업을 위해 따 놓는

 많은 자격증 시험 등등...

이러한 시험으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렵고 힘들다면서

 그냥 포기하면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들어도 꾹 참고

버텨서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여기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보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 힘든 시험을 잘 치루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어렵고 힘든

시험들을 왜 주셨는지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이에 따른 보상으로 더 큰

선물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에서도

 “저희에게 유혹을 주지 마소서.”

가 아니라,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였습니다.
유혹이라는 시험을

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유혹이라는 시험을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라는 것이지요.

여러분 앞에 다가오는

 모든 시험을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분명히 커다란

선물이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에 앉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다고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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