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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평소에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5 조회수1,864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시고, 그 계약을 깨뜨리지 마소서
 >


독서: 예레 14,17ㄴ-22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작, (1520-22)


< 평소에 하느님 닮아야 하는 이유 >

 

영국에 있는 대형 박물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어떤 젊은 신사가 이 박물관에 들어와 그곳에 진열된 작품 앞에서 엉거주춤하게 앉은 자세로 그 작품들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더니 노트를 꺼내 이것저것 열심히 적으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습니다. 처음부터 이 청년의 수상한 거동을 지켜보던 수위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 그 젊은 신사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같은 작품들 앞에서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설명 태도는 너무나 진지했고 어린이들은 아주 잘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관림이 끝나고 돌아가려던 그 신사에게 수위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습니다.

선생님, 어째서 어제는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작품을 보셨습니까?”

그러자 그 선생은 바로 이 아이들의 작은 키로 이들이 볼 수 있는 눈높이에서 작품을 보고 이해하기 위해서였죠.”

 

아마 하느님께서도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눈높이를 낮추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강생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좀처럼 눈높이를 높이려 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나의 관점에서 하느님을 판단합니다. 조금만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하느님은 나를 미워한다거나 버리셨다거나 벌을 주신다고 판단해버립니다.

그런데 내가 주님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나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판단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곧 지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임을 알아야합니다. 만약 내가 자비롭지 못한 사람이라면 하느님도 그렇다고 생각하여 이런 죄는 용서 받을 수 없겠지하며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준으로 하느님까지 평가하기에 하느님처럼 완전해지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들을 보며 자칫 그분을 잘못 평가하고 구원에서 멀어져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가 이 기도를 바칠 때는 유다지방이 전대미문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가뭄에 굶주림과 병듦, 도둑질과 싸움질로 온 유다지방이 지옥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하며 주님께서 내리시는 벌이 너무나 큼을 한탄합니다.

당신께서 완전히 유다를 버리셨습니까? 아니면 당신께서 시온을 지겨워하십니까?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보이는 현상을 넘어서,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 다 우리가 잘못했으니 그런 벌을 받는 것이라 여깁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이 앉아계신 옥좌를 위하여, 또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을 위하여, 또한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에 당신은 이 모든 시련에서 우리를 구하실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비를 다시 내리게 하실 분임을 믿고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라고 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하느님은 절대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실 분이 아니야!’라는 굳은 믿음이 기도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이 전적인 신뢰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에 주님을 닮으려고 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한 것은 이 정도는 지켜주는데 하물며 주님이야!’라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약속도 잘 어기는 사람이었다면 주님도 그러할 분으로 여겨서 그럼 그렇지!’라고 말하며 계약을 쉽게 파기하는 자기와 같은 수준으로 주님을 끌어내립니다.

 

이렇듯 전적인 신뢰와 믿음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처럼 완전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이렇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처럼 완전해 질 수 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노력해야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주님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히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처럼 되느냐고 포기하기 이전에 하느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자주 내 삶에 적용하며 살아야 마지막 시련까지 잘 이겨내고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믿게 되어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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