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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7 조회수2,52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


독서: 예레 18,1-6







그리스도(Young Jew as Christ)


렘브란트 작, (1656), 베를린 국립 박물관


< 옹기장이 손이 있는 진흙처럼 >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딸은 디나 한 명만 나옵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을 잃었다고 믿었을 때 절망에 빠지지만 스켐 성읍의 하모르의 아들 스켐이 디나를 폭행했을 때는 마치 그럴 수도 있다는 듯 의외로 침착하게 행동합니다. 그리고 열두 아들이 돌아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서 아들들을 분개하게 만듭니다. 아들들은 자신의 여동생 디나를 원하는 스켐 성읍의 모든 남성들이 할례를 받게 만들어서 사흘 째 되는 날 그들이 몹시 아파할 때 칼로 모조리 쳐 죽입니다. 그리고 그 성읍을 자기들 마음대로 약탈합니다. 아버지는 그들에게 자신을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흉측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자녀들은 우리 누이가 창녀처럼 다루어져도 좋다는 말씀입니까?”라고 하며 여전히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상 아들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아버지 야곱이었습니다. 어쩌면 스켐 성읍을 차지하기 위해 딸의 희생과 아들들의 분노를 이용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이 야곱의 딸들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스켐의 모든 남자들을 없애버리고 스켐 도읍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세 34,1-31 참조).

 

하느님도 우리를 이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점령하십니다. 우리가 처음엔 당연하게 성체와 성혈을 영합니다. 그것이 하느님께 어떠한 고통을 드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또 당연하게 성체와 성혈을 청하고 게다가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청합니다. 그래도 되는 줄 압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성체와 성혈은 우리 마음 안에서 분노로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마음의 할례를 받을 때입니다. 내 자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그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또 무언가를 당연히 청하면 그분이 또 당연히 들어주셔야 하는 것으로 알고 살아온 것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렵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할례를 받아 피를 흘리듯이 우리 마음도 피를 흘리고 쓰러지게 됩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그분이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내 뜻이 사라져 모든 일에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온유한 마음을 갖게 되기까지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 안에서 쉼 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베드로도 처음엔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셔야 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감히 자신이 주님께 이래라 저래라 해도 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이 자신의 책임임을 절감하고는 자신 안에 있는 남성들인 자아가 죽고 매우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을 때 모르는 사람이 오른 쪽에 그물을 쳐 보라고 하면 그대로 따라서 할 정도까지 겸손해집니다. 이렇게 당신 마음대로 약탈해도 될 상태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교회를 맡기시며 당신 양들을 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점령되어 가고 그렇게 점령된 사람이 주님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독서에서는 주님께서 옹기장이에 비유해 설명해 주십니다. 예례미야 예언자를 옹기장이에게 보내어 옹기장이기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그릇 만드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이런 옹기장이처럼 당신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오게 될 때까지 우리를 빚으시는 것입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오게 되려면 옹기장이 손에 있는 흙이 너무 질어서도 안 되고 너무 말라서도 안 되며 거친 모래들이 섞여 있어도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는 우리 안의 남성의 성향들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하려는 성향이 있으면 아무리 옹기장이가 자신 마음에 드는 그릇을 만들려고 하더라도 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의 손에서 그분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흙의 상태, 그 상태가 될 때까지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시기를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저는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제가 원하는 것을 절대 하게 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영성관에 와있는 것이 신학교 때부터 원했던 삶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20년 동안 당신 원하는 대로 저를 돌리시고 이제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나의 뜻이 사라졌기에 이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흙의 뜻이 없어질 때 옹기장의 뜻이 완전해지고 그렇게 완전한 그릇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완전한 온유를 지니게 될 때까지 그분의 연단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완전하지도 않은데 그분이 우리를 괴롭히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일인데 버려진 흙이 되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행복해 하십시오. 그분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아직 당신 손으로 우리 뜻이 완전히 사라진 좋은 흙이 될 때까지 작업하시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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