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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삼용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온유와 겸손이 사랑보다 앞서는 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8 조회수3,191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성녀 마르타 기념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독서: 요한 1서 4,7-16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한 여자 청년이 몸에 혹이 자라나고 있어서 대학도 잠시 접고 어머니와 함께 상담을 하겠다고 저를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해 본 결과, 어머니는 딸을 너무나 사랑하여 딸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딸을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느끼며 모든 일에서 자기의 뜻은 버리고 어머니의 뜻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되니 자기로 살지 못한 분노가 몸 밖으로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계기가 딸이 남자를 사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더 이상 딸을 통제하기 어려워졌고 그렇게 갈등이 더 커졌던 것입니다.

그 상황을 보니 전에 우리나라에서 천재라 불리던 어느 명문대학 교수 아버지가 학교에서 들어와서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깨워놓고 세미나를 시키고는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물론 자신이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니 자녀들도 그 명성에 합당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시켰겠지만, 그리고 그런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겠지만 그 모든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 괴롭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믿으며 사람을 만나지만 자기를 들어내던가, 높이던가 아니면 상대를 이용해 자기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고 속고 있지만 실상은 상대를 이용하는 이기주의의 산물입니다. 사랑이라 말하지만 실상은 그 포장 속에 이기주의만 가득한 것을 우리는 참 많이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계약을 맺은 신부들입니다. 신부는 신랑에게 순종하고 신랑은 신부를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당신 피를 내어주셔서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지위에 앉혀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그 모습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요한은 오늘 독서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계약을 파기한 것이기 때문에 그분 덕택으로 받는 구원의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밖에 머무는 것입니다. 하느님 밖에 머문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마지막 순간이 오면 누구는 노아의 방주 안에 있고 누구는 노아의 방주 밖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만 마지막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노아의 방주 안에 머무는지 아닌지는 바로 두려움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방주 밖에 머무는 사람들이 갖는 특징입니다.

사랑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주님 안에 머뭅니다. 주님은 당신 뜻을 따르는 사람들을 보호해주십니다. 모세가 주님의 뜻을 어기고 바위를 지팡이로 두 번 친 실수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이 주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이고 사랑을 실천해야만 주님 안에 머무르고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신다는 것을 잘 알기는 하지만 사랑하려 해도 잘 안 된다고 말합니다. ‘사랑해야지라고 결심하고 하루를 살다가도 어느 순간 누군가를 험담하고 있고 누군가를 노려보고 있고 누군가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어도 왜 안 되는 것일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신데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을 하려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계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지도 않고 사랑하려고 한다는 것은 차에 기름도 채우지 않고 운전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직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주인으로 오시려고 하는데 이미 주인이 떡 버티고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고 싶으셔도 머무실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자아는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자아가 살아있다면 내 안에서 주님의 뜻은 돌아가시게 됩니다. 자아는 그래서 교만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이 되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유와 겸손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사랑이 내 안에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당신의 멍에, 즉 성령을 받고 당신의 사랑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온유하고 겸손해지려는 우리 의지적인 노력이 있어야합니다. 내 안에 내가 주인으로 있는 한, 그래서 교만하고 고집만 가득한 사람으로 머무는 한 사랑은 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할뿐더러 나오지도 못하게 됩니다. 온유와 겸손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가질 수 있는 덕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의지입니다. 하루 종일 이 덕을 시험하고 갈고 닦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바로 계명이기 때문에 온유와 겸손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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