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7.29 금/ 앎과 믿음이 어우러지는 사랑 실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8 조회수1,701 추천수8 반대(0) 신고




성녀 마르타 기념 요한 11,19-27(16.7.29)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Lord, if you had been here, my brother would not have died."





앎과 믿음이 어우러지는 사랑 실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본격적인 예루살렘을 향한 수난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라자로를 소생시키는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곧 믿음을 정화시켜주심으로써 십자가 인생길을 걸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켜주시는 것이지요.

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죽자 많은 유다인이 일주일 동안 조문하는 당시 관습에 따라 마리아와 마르타를 위로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위안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인간적인 위로 이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앎’을 ‘믿음’으로 바꿔주십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11,21) 이 말은 주님, 어디 계셨습니까? 왜 아무것도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는 탄식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2)라고 말합니다.

마르타의 탄식은 바로 그리스도교인들 곧, 나의 외침일 수 있습니다. 고통과 시련과 외로움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순간 나의 이런 처지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나의 어려움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켜주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버리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음에도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압니다.”(11,24)라고 대답합니다. 마르타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속에서만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성으로 헤아리려 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생명의 주인이심을 알긴 했으나, ‘지금 여기서’ 죽음을 이기시는 분임을 온전히 믿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앎’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마르타를 진정한 신앙으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11,25-26)

참 신앙은 아는 것만으로 도달할 수 없습니다. 믿고 사랑하기 위한 지식, 아는 것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성경과 교리 지식으로 예수님이 구세주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심을 안다고 해도 믿지 않고, 믿지만 그것을 살아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르타는 예수님의 이끄심으로 다시 낙관적인 신앙으로 돌아와 놀라운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11,27) 앎과 믿음, 비통함과 소망 사이를 오가는 나 자신이 바로 또 다른 마르타가 아닐까요? 오가는 나날의 길목이 바로 신앙고백에로 초대입니다.

우리 모두 패배감과 실망, 좌절의 순간에도 마르타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영원 생명이요 희망이신 주님께 되돌아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16)

오늘도 일상의 삶에서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의 깊은 내적 일치를 이루고, 마르타처럼 앎과 믿음이 어우러지는 사랑을 실천하는 복된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