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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7.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7-29 조회수1,14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 기념일

 제1독서 1요한 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

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 요한 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인터넷 안에서

고통순위라는 것을

매겨서 올려놓은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1위는 작열통으로 몸이

 불에 탈 때의 고통이랍니다.

 2위는 절단으로 신체 일부가

절단되면서 생기는 고통입니다.

 3위는 무엇일까요?

3위는 출산의

고통이라고 하네요.

저야 뭐 남자이고 또 결혼도

하지 않으니 출산의 고통을

 알 탁이 없지만, 방송에서

보게 되는 출산의 모습을 통해

정말로 힘들고 고통이 크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산모들은 아기를 낳을 때

소리를 지릅니다.

실제로 창피하다고 소리 내지 않고

 이를 악 물고 참으면 이빨이

다 나갈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을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과 시련의 문제 역시

 주님께 기도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마치 아이를 낳을 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주님께 소리를 지르면서

큰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떠나게 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의 이 문제들이 해결되면

때 다시 신앙생활을

하겠다면서 말이지요.

그러나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면서

의지할 때 문제 해결도 수월하게

그리고 편하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라자로의

죽음에 대한 동생 마르타의

생각이 나옵니다.

먼저 그녀는 서운한 감정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요.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대답해주었지만, 마르타는

먼 훗날 마지막 날 부활 때를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마르타는

주님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아직

신앙도 부족하고

주님께 대한 이해도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말하면서

주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라고 올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오빠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만약 마르타가 서운한 감정만

 간직한 채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주님께 대한 원망만 가득 가지고서

가까이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표현하면서

주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우리 역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혼자서 끙끙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기도라는 양식을 통해

 소리를 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과정 안에서 주님의 뜻을 알게 되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커다란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삶의 종점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바로 여기의 하루가

그렇게도 소중한 것이다.

(한효정)

베타니아의 라자로 성당의 성화입니다.

죄지을 가능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교회의

쇄신을 주도했던 요한 23세 교황님께서

하루를 죄수들을 만나기 위해

교도소를 방문하셨습니다.

 독방 앞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 교황님께서는

“여기에 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지요.

 교도소장은 “이곳은 사형수 감방입니다.

저 사람은 자기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교황님께서 창살 너머에 있는

죄수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교황님께서는 교도소장에게

요청을 해서 사형수 감방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감방 안에 있는 사형수는

벽을 바라보고는 돌아서려고도

하지 않고 있었지요.

교황님께서 교도소장에 묻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까?”
교도소장은 재차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를 살해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조용히 말을 건냈습니다.
“이보게 젊은이,

 난 결혼한 적이 없네만,

자네 그거 알고 있나?

만약 내가 결혼했었다면 나 역시

아내를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네.”
이 말에 죄수는 돌아서서

교황님을 껴안으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절대 죄를

짓지 않을 것처럼,

남을 너무나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베타니아의 라자로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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