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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03 조회수1,258 추천수0 반대(0) 신고

,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마태15,21-28)

 

 

마태15,21절은 그때에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라고 말한다. 앞의15,1-20절에서 위선적인 종교인에게서 떠나기를 원하셨으므로, 그분은 하느님께 저주를 받은 곳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이사23, 요엘3,4)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공개적으로 이 지방을 저주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은밀한 죄인들을 떠나셔서 공개된 죄인들에게로 향하기를 좋아하셨다! 비록 우리가 티로와 시돈에 살지는 않지만, 우리 또한 그러한 영역 안에 있다.

22절은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주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귀신이 들려 심하게 고통 받고 있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하였다.

 

마귀가 들려귀신이 들려로 정확히 번역되어야 한다. 이 가나안 여인은 저주받은 가나안 족속에 속했다(창세9,25-26). 그녀는 저주받은 땅에서 왔다. “라는 말은 자비를 구하는 외침이며, “다윗의 아들이라는 말은 잘못된 외침이다! 다윗의 아들은 가나안 여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23절은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간청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만일 주님이 다만 다윗의 아들이었다면 그분은 이방인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것이다.

 

이 여인은 주님을 붙잡는데 있어서 합당치 못한 위치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을 부르는 방법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자들이 이 귀찮은 여인을 견딜 수 없었으므로, 그들은 주님께 그녀의 요구를 속히 들어 주시기를 구했다.

 

24절은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만 보냄을 받았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땅 위에서의 모든 역사는 유다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방인들을 위한 그분의 공개적인 역사는 코르넬리우스(코넬료)의 집에서 시작된다. 그때까지 주님의 이방인들을 향한 역사는 다만 암시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그분이 이스라엘인의 집에 가실 때에도 그분은 잃어버린 양(남은 자)에게로 가셨다. 주님은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 그분은 그 여인에게 하나의 붙잡을 손잡이를 주고자 하셨다! 주님은 이스라엘 집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 이제 그분이 잃어버린 양에게 가고자 하시므로 그 영역은 훨씬 더 넓어졌다!

 

그 여인이 잃어버린 양이 아닌가? 그녀는 은총을 받을 수 없겠는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자신이 잃어버린 양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녀가 생각할 수 있도록 멀리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이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거절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침묵의 허락하심이었다! 그분은 그 여인에게 은총을 베푸시기를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 여인이 죄인의 위치에 서 있지 않았으므로 주님께서 그녀의 요구에 응답하시기 어려웠다!

 

하느님께서 침묵으로 지연하시는 것은 거절이 아니다! 우리 하느님이 지연하실 때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께서 한 마디 말씀을 하신 후에 그분은 멈추셨다. 그러나 그분은 속으로 우리를 무한히 기다리고 사랑하기를 갈구하고 계셨다! 그분의 겉으로 보이는 간격은 참다운 간격이 아니다!

 

25절은 그러나 여인이 와서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라고 말한다. 이 여인은 주님의 말씀의 붙잡을 손잡이를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붙잡았다! 예수님은 온 이스라엘 나라를 티로와 시돈과 같은 동일한 수준으로 낮추셨는데 결국 모든 사람은 죄인들이다!

이제 그 여인은 주님을 다만 라고 부르며, “다윗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삭제해 버렸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 구원이 무엇인가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알렐루야!

 

2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떡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이것이 처음으로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직접적으로 대답하신 것이었다. 이전에 하신 말씀은 그 여인에게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주님은 유다인들을 양들에 비유하셨고,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하셨다!

 

오직 유다인들만이 하느님의 양떼가 될 자격이 있었으며, 그들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언급된 주님의 양무리이다. 또 다른 양들은 구원받은 이방인들이다. 모든 유다인들이 양들은 아니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양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잃은 양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방인들은 그들 또한 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개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양은 굽이 갈라졌으며(이는 외적인 정결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되새김질을 한다(이는 내적인 정결함을 말한다). 이 여인은 자신을 양으로 생각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녀가 개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를 거절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녀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주님은 그녀에게 또 다시 붙잡을 손잡이를 주셨다!

 

27절에서 그 여인이 말하였다.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원문 참조)하고 말하였다.

옳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여인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옳고 그녀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리스어에서는 라는 단어는 두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들개를 말할 때, 또 하나는 집에서 기르는 개를 가리킨다.

주님은 그녀에게 그분의 말씀의 손잡이를 주셨으며 그녀는 그것을 붙잡았다! 그녀가 의미했던 바는 비록 나는 개이지만, 나는 당신의 개입니다. 내가 당신의 개이므로 나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28절은 그때 예수님께서 . 여인이여! 그대의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그대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시자, 바로 그때에 그 여인의 딸이 나았다.”고 말한다. 주님은 처음으로 그녀를 칭찬하시고 그녀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셨다. 주님은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기뻐하셨다!

 

하느님께서 지체하시고 시험하시는 것은 마치 믿음의 훈련소와 같은 성격이다! 사실 응답하시는 것이 지연될수록 믿음은 더 커진다! 다윗의 아들은 타고난 육체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만일 당신의 행위가 선하고 행동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은 당신을 포기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자신을 기꺼이 낮추고 개의 위치에 선다면, 하느님은 당신을 축복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 구절에서 어떻게 기도해야하며, 하느님의 말씀의 손잡이를 붙잡는 비결을 배우기를 기도드린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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