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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어놓을 줄 알아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07 조회수1,10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19주일


<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


복음: 루카 12,32-48

  





   

스쿠버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이 있어서 물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런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 같아서 일부러 배워봤습니다. 10미터 이상 내려가서 달랑 호흡기 하나에 목숨을 맡기고 있기란 여간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호흡기가 빠지지나 않을까, 산소가 부족하지나 않을까 등의 생각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물속에 있다 보니 세상의 삶과 닮아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속에서 두려움 때문에 긴장을 하면 숨을 몰아쉬게 되어 허파 속의 공기가 다 빠져나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몸이 차분히 가라앉지 않고 붕 뜨게 되고 시야는 매우 좁아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공기는 충분히 있으니 한숨을 내쉬듯 끝까지 숨을 내뱉는 연습을 합니다. 물속에서 내 안에 있는 숨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내뱉는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가슴으로만 숨을 빨리 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죽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숨을 끝까지 다 내뱉으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몸이 아래로 가라앉으면서 아름다운 산호초와 물고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바다 속의 평화로움과 만나게 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옆에는 항상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믿기만 한다면 산소가 다 떨어져도 마스크가 벗겨져도 발이 산호에 끼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두려움에 당황하니까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즐기려면 두려움을 없애야하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믿어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들 작은 양떼야,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양떼는 목자가 있습니다. 목자는 푸른 풀밭으로 양떼를 이끌 책임이 있습니다. 주님은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냥 믿기만 하면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우리를 챙겨야합니다. 더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기 위해 숨을 가쁘게 쉬는 것과 같습니다. 두려움은 다 내어주지 못하게 하고 더 챙기려고만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하나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남은 것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을 팔아서라도 내 안의 것을 빼어내라는 것입니다. 돈은 마치 산소처럼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피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렇더라도 피는 돌지 않아도 썩고 죽지 않으면 새 것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산소를 많이 들이마시려고 하더라도 몇 분을 버틸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때는 숨을 배로 쉽니다. 끝까지 들이마시고 끝까지 편안하게 내뱉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고 숨을 가슴으로만 쉬게 됩니다. 긴장이 되면 가슴으로만 빠르게 숨을 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배가 차가워지게 되고 몸에 이상이 오게 됩니다. 돈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자꾸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두려움이고 그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즐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어놓을 줄 아는 사람에게 부족함 없이 채워줄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계산하지 말고 믿어야합니다. 우리는 매일 새들까지도 먹이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둔 이들입니다.

 

결국 두려움이 인생을 경직되게 만들고 병들게 만들고 즐기지 못하게 만드는데 그 두려움은 믿지 못하는 교만으로부터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라는 영화는 두려움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고 또 무엇으로 나타나며 그러면 삶이 어떻게 되는가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위대한 소솔 모비딕의 소재가 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낙하산으로 선장이 되어 가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고래 잡는 배를 탄 한 사람과 농민 출신으로 신분상승을 통해 선장을 해 보려는 야망을 지닌 일등 항해사의 갈등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1800년대 고래 기름으로 불을 밝힐 수 있음을 알게 된 후 전 유럽은 고래잡이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씨가 말라가는 고래를 찾아 두 야망을 품은 이들은 여럿의 선원들을 이끌고 아주 먼 곳까지 갑니다. 이 둘은 서로의 야망 속에서 질투하고 미워하며 누가 서로 많은 고래를 포획하느냐 경쟁까지 하게 됩니다. 그리고 배를 공격하는 거대한 고래가 산다는 곳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 고래는 이 배들을 난파시키고 작은 보트에서 보잘 것 없이 바다에 표류하는 신세를 만들어버립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먼저 죽은 사람의 인육을 먹어가면서까지 연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깨닫습니다. 결국 가문의 명예를 지키지 못하는 안 되는 두려움을 가진 선장은 그것 때문에 탐욕을 부리게 되었고 자연의 섭리 앞에 굴복하여 바다 위에서 죽을 운명만 기다려야 하는 초라한 신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일등 항해사 또한 선장이 되고 싶은 탐욕으로 그 큰 고래를 화나게 하여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더 이상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질 수 없게 됩니다. 이들은 죽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구조되었고 이젠 땅 위에서 두려움 없이 살아갑니다. 고래잡이 산업의 하락을 막기 위해 괴물 고래가 존재한다는 것을 감추려고 하는 이들 앞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를 포기하며 당당히 진실을 밝힙니다. 자유로워 진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겸손해 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려움으로 자기만을 챙기려고 하는 것을 잠자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없이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을 깨어있는 삶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그리고 그 깨어있는 종들이란 자신의 믿음으로 두려움 없이 나눌 줄 아는 이들입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것을 이웃을 위해 내어주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집사들입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다가는 노아의 홍수 때처럼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두려움으로 세상을 한 번 즐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는 이들입니다.

 

금융위기 당시 세계 94위 갑부였던 독일 아돌프 메클레(74) 회장은 재산이 몇 조대로 떨어져서 달리는 기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몇 십조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느냐 안 받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과 자연에 해를 입히고 그 벌을 받고야 맙니다. 지금 온난화도 인간의 이기주의가 자연을 훼손하여 벌을 받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팔아서라도 내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즐기지도 못하고 구원받지도 못합니다. 이 연습을 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도 두렵다면, 오늘 복음말씀으로 치자면 깨어있지는 못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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