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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09 조회수1,33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8월 9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제 2,8─3,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 “너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저 반항의 집안처럼

반항하는 자가 되지 마라.

그리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먹어라.”

9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나에게 뻗쳐 있는데,

거기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 그분께서 그것을

내 앞에 펴 보이시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비탄과 탄식과

한숨이 적혀 있었다.
3,1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네가 보는 것을

받아먹어라.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2 그래서 내가 입을 벌리자 

그분께서 그 두루마리를

 입에 넣어 주시며,

3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그리하여 내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4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스라엘 집안에게 가서

그들에게 내 말을 전하여라.”

복음 마태 18,1-5.10.12-14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저는 제 차를 가지고 있고

또 운전을 하지만 자동차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운전을 한 지가 거의 20년이

가까웠지만,

솔직히 자동차에 대해

몰라도 별 불편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비소나 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제가 단골로 가는 집이 있는데

그곳의 사장님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정비를 해주시고 자동차 부품의

적당한 교체시기까지 미리미리

알려 주셔서 어떤 곤란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운전 역시 마찬가지지요.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인해

예전처럼 지도를 일일이

살펴볼 필요 없이 초행길이라도

 걱정이 없습니다.

 단지 저는 운전만 하고

기름이 떨어졌다고 표시를 하면

주유소에 가서 주유하면 그만입니다.
약간의 노력으로도 자동차 운전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정비소나 주요소에 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비게이션 등

기계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운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운전을 잘 한다는 소리를 

듣기가 힘들지 않을까요?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평판을 받는

분들을 보십시오. 

그 모든 것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보호하심이 있었고,

 내 이웃들의 도움으로 인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작은 노력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정작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과 이웃들의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인데 말입니다.
어제 복음은 성전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좀 의아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차별하시는

모습입니다. 공평하신 주님이

아니십니까? 하지만 어제

복음 말씀을 보면

조금 불공평해보입니다.

글쎄 함께 다녔던 제자들도

여럿 있었는데 그들을 배제하고,

 단 한 명인 베드로의

성전세만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을 감독하는 지위를

받았을 것이라 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하긴 하늘 나라의 열쇠까지도

주어졌으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는

질문을 했던 것이지요.

 즉, 주님께서 베드로의 세금을

내주셨다는 사실에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베드로를 생각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같이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상의 기준으로 주님의 뜻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낮춰서 주님의 뜻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때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과

주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세상의 기준으로

주님을 판단하려고 할까요? 

무지함을 두려워 말라.

거짓 지식을 두려워하라.

(파스칼)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질문의 차이

(최규상, ‘긍정력 사진’ 중에서)

한마을에 죽을 파는

두 개의 가게가 있었다,

두 죽 가게는 맛도 가격도,

 손님도 비슷했지만

늘 한 가게의 매출이 높았다.

그래서 컨설턴트가 두 가게를

지켜보면서 고객과의

대화를 분석했다.

오른쪽 가게의 종업원은

죽을 내오면서

"계란을 넣을까요?

말까요?"

라고 손님에게 물었고,

 왼쪽 가게의 종업원은

이렇게 물었다.
"신선한 계란을

하나 넣을까요?

두 개 넣을까요?"
질문의 차이가 계란 판매

매출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세계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작은 질문이

큰 결과를 만들어냈다.
긍정적인 행동을 이끌 수 있는

  질문들을 해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부정적인 생각들을

밀어내고 대신 긍정적인 생각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서울신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반가운 자리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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