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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1 조회수1,551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6년 8월 11일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

제1독서 에제 12,1-12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사람의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3 그러니 너 사람의 아들아,

유배 짐을 꾸려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네가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행여 자기들이 반항의 집안임을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4 너는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5 그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뚫고 나가라.

 6 너는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마라.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을 위

예표로 삼았다.”
7 나는 명령을 받은 대로 하였다.

짐을 유배 짐처럼 싸서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저녁에 손으로

 벽을 뚫고,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8 이튿날 아침에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9 “사람의 아들아,

저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10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이 신탁은 예루살렘에 있는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11 너는 또 말하여라.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내가 한 것과 똑같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유배를 당해

끌려갈 것입니다.’

12 그들 가운데에 있는

수장은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이 그를 내보내려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복음 마태 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미국의 어떤 대주교님께서

경비가 산엄한 교도소에서

피정 지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도소의 규모는 자그마치

이천 여 명의 재소자가 수감되어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지요.

그런데 피정 지도가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재소자의 마음속에는

‘대주교님은 선하고,

 자기는 악하다.’

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피정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즉, 대주교님이나 재소자나

별 차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피정에 임해야 하는데,

너무나 극단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여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지요.

바로 그때 대주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바로 여러분은 잡혔고

저는 잡히지 않았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떨까요?

차별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똑같이 다가오시는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은총의

큰 선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몇 개의

숫자가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일흔일곱이라는

특별한 수를 말씀하시지요.

 이 수는 모든 세대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단 한 세대도 빠지지

않았으므로, 십자가 안에서

주어진 하느님의 용서라는

충만한 선물을 받지 못할 세대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용서의

숫자는 몇 번일까요?

 주님께서는 이 용서의 횟수를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자그마치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용서를 여러 번

하라는 것은 그만큼 분노할

시간을 갖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하시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용서에는 내 이웃을 향한

용서만이 있지 않습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서도 잘 용서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와 실수한 일에

대해 집착하는 태도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가책으로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용서까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단 한 번 용서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일곱 번씩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책을 보니, 용서는

눈물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바로 땀을

흘릴 정도의 노력이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땀을 흘릴 정도의 노력이

함께 하는 노력,

그래서 몇 번의 용서가 아니라

  계속된 용서를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용서란 상대방의

가슴에 꽂힌 칼을

뽑는 것이 아니다.

용서란 내 가슴에

 내가 꽂은 칼을

내가 빼는 것이다.

성녀 클라라.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에 한명인

오프라 윈프리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못합니다.

 9살 때부터 가까운 친척과

주변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14살에 미혼모가 됩니다.

또한 마약을 했으며 비만으로

100Kg이 넘는 몸무게를

갖기도 했지요.
이러한 최악의 삶에서

벗어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했던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고?)

이었습니다.
이 말을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던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노예가 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우리 역시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쿨하게

이렇게 외쳐보면 어떨까요?
“So What?”

(그래서 뭐 어쨌다고?)

오프라 윈프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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