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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난의 정신 - 인영균 끌레멘스 신부님(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델 까미노 수도원)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1 조회수1,161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1독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2,1-12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21─19,1


 

 

성녀 클라라 동정 기념일(2016년 08월 11일) 가난의 정신

 

“하느님, 복된 클라라를 자비로이 이끄시어 가난을 사랑하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가난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다가,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오늘 미사의 본기도입니다. 성녀 클라라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동반자로 ‘가난’과 혼인하였습니다. 가난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분이셨기에 ‘가난한 주님’과 혼인한 것입니다. 성녀를 통해서 우리 역시 ‘가난의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함을 깨닫습니다.

 

가난의 정신 혹은 가난의 영성을 생각해 봅니다. 가난의 영성이란 한 마디로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마저도 하느님 안에서 승화하고 봉헌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내어 맡기는 마음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칠 때 모든 것을 섭리에 내어드리는 매일의 봉헌입니다.

 

가난한 정신의 사람만이 주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감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그런데 우리 자신이 무엇이라고 용서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됩니다. 우리 자신이 늘 용서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대체 무슨 염치로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용서할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와 관계된 모든 것을 주님의 자비에 맡겨드리는 것이 참다운 의미의 용서입니다. 진정한 용서란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신비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자비에 우리 형제들을, 심지어 아무리 극악무도한 악인이라도 맡겨들입니다. 여기에 진정 가난의 정신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스페인 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델 까미노 수도원에서
인영균 끌레멘스 수사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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