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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두 종류의 죄책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2 조회수1,49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다해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독서: 에제키엘 16,1-15.60.63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죄책감이나 수치심은 좋은 것일까요, 안 좋은 것일까요? 어떤 수치심이나 죄책감은 좋은 것이고, 또 어떤 것들은 좋지 않은 것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은 바로 그런 것을 느낄 때의 나의 행동방식으로 구별됩니다.

여성을 26명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자신의 살인을 이혼한 아내에게서 당한 정신적 충격으로 돌립니다. 혹은 연쇄살임범 정남규는 나처럼 그런 폭력의 피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저처럼 됐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치심이나 죄책감은 잘못된 죄책감이고 그 죄책감으로 인해 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한 행동이 바로 자기합리화였습니다. 톨스토이 원작 안나카레리나에서 안나는 자신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고 그것이 들켜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오히려 남편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남편을 되레 공격합니다. 이렇듯 문제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아니라,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자세에 달린 것입니다.

 

죄 짓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이들은 죄에 대한 수치심과 죄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그 죄책감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줍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시어 그들의 역겨운 짓들을 일깨워주십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혈통에 대해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본래 가나안 땅 출신이고 아모리 남자의 아들이고 어머니가 히타이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지옥 갈 운명으로 태어났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인간은 애초부터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 나라 가기에 불가능하게 태어납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탯줄도 잘라 줄 사람 없이 태어난 핏덩어리였음을 상기시키십니다. 우리를 당신 피로 씻으시고 당신 성령으로 기름 발라 주시고 당신 생명의 옷을 입히시고 치장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길거리에서 그냥 죽어버렸어야 할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 처지였고 그렇게 구원받았음에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죄책감을 묻어버림으로써 또 죄를 짓고 죄와 바람을 피웁니다. 주님께서 입혀주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오히려 자신의 쾌락을 위해 이용합니다. “그런데 너는 네 아름다움을 믿고, 네 명성에 힘입어 불륜을 저질렀다. 지나가는 아무하고나 마구 불륜을 저질렀다라고 하는 말씀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죄책감을 자기합리화 했기 때문에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당신이 직접 택하신 신부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스라엘 백성인 이리를 당신의 신부로 혼인계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런 은총 속에서 이전의 자신의 비참했던 모습을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네가 저지른 모든 일을 내가 용서할 때, 네가 지난 일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수치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의 부끄러운 면을 굳이 들추어내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용서할 때 적어도 그 수치심 때문에 부끄러워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와 용서를 받을 때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거역하며 살아온 것 때문에 몹시 부끄러워합니다. 이 부끄러움은 감사를 더욱 커지게 만듭니다. 이런 자신을 구원해주신 주님께 더욱 큰 찬미와 영광을 드리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굳이 합리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가 이렇게 큰 줄 아니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이렇듯 주님께서 부끄러움을 들추어내시는 이유는, 용서를 받고나서는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의 부끄러움 때문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이는 이미 용서받을 준비가 되었지만, 자신은 죄 없다고 말하며 타인까지 판단하는 이는 아무리 고해성사를 봐도 죄가 용서되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면 굳이 죄를 일깨워주시는 행위는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잘못된 죄책감은 타인을 판단하며 자기 수치심을 가리려하지만, 참된 죄책감은 이런 자신을 주님께서 덮어주셨기 때문에 감사와 찬미가 우러나오고 결코 타인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잊지 않으려하는 것은 그만큼 그분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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