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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8.1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3 조회수1,10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에제

18,1-10ㄱ.13ㄴ.30-32

1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2 “너희는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
3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다시는 이 속담을

이스라엘에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4 보아라, 모든

목숨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목숨도

자식의 목숨도

 나의 것이다.

죄지은 자만 죽는다.
5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6 곧 산 위에서

음식을 먹지 않고,

 이스라엘 집안의 우상들에게

눈을 들어 올리지 않으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않고

달거리하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으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빚 담보로

받은 것을 돌려주며,

강도 짓을 하지 않고

굶주린 이에게 빵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 주고,

 8 변리를 받으려고 돈을

내놓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고 불의에서

손을 떼며,

사람들 사이에서 진실한

판결을 내리면서,

9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진실하게 지키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10 이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피를 흘리게 하면,

13 아들이 살 것 같으냐?

그는 살지 못한다.

이 모든 역겨운 짓을 저질렀으니,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가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30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모든 죄악에서 돌아서라.

그렇게 하여 죄가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여라.
31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32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복음 마태 19,13-15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명절날에 꽤 많은 분들이

제게 과일이나

 명절 음식을 보내주십니다.

아마도 혼자 명절을 보내는 것이

 안쓰러우셔서 그렇겠지요.

너무나 감사한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그 양이 저 혼자

소비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올 초의 설 명절 때에도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해

과일 상자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쎄 상자 맨 위에 보이는

부분은 빛깔이나 크기가

너무나 좋은데 반해,

바로 밑에는 크기도 작고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 과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절 하루 장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윗줄과 아랫줄의 너무나도

큰 차이로 인해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최고의 상품인

윗줄만을 보고서 그 과일

가게를 좋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다 나쁜 상품일수도 있는데

좋은 상품이 절반이나 되니까

훌륭한 집이라고 말할까요?

아마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상품이 있는 아랫줄만을

생각하면서 속여 파는 집으로

그 과일 가게를 나쁘게 볼 것이고

이제 더 이상 이용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일 상자의 모습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들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과일 상자의 윗부분은

우리가 현재 받는

 외적인 평판이고,

보이지 않는 과일 상자의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성품이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외적인 평판은 좋지만,

실제의 성품이

좋지 않다면 어떨까요?

사실 외적인 평판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품은 바로

알아볼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드러지게 되어

 오래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품이 사람들의

모든 판단을 뛰어넘어서

 이제까지의 평판에 관계없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평판에 신경을

써야 할까요? 아니면 자신의

성품에 신경 써야 할까요?
사람들이 어린이들은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바로 그때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지요.

사실 당시에는 어린이의 존재를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바쁜

예수님께 이런 어린이들까지

데리고 오느냐는 것이지요.

바로 그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주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품들을 보신 것입니다.

만약 당시의 어른들처럼

단순히 외적인 부분만을 봤다면

 거절을 하셨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순박함,

단순함,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자기가 입은 해를 잘 잊는 것 등등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성품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품을 계속해서

 키워나갈 수 있도록

머리에 손을 얹으십니다.
하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본성상 가지고 있는 성품을

계속해서 키워나가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은 어떤가요?

혹시 성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외적으로 보이는 평판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재미있는 삶이고,

너를 사랑하는 것은

의미있는 삶이다.

(주철환)

수원신학교에 있습니다.

애착 이론

(attachment theory)

정신분석 이론 중에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영아가 정상적인 감정,

사회적 발달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주 보호자

(primary caregiver)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배고플 때 먹여 주고,

울면 달래 주고,

졸릴 때 재워 주는 엄마

(양육자)를 통해

아이는 자신과 타인과

세상에 대한 믿음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애착 이론’은 인간이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론입니다.

양육자 없이 정상적인

성장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양육자가 반드시

‘엄마’일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 ‘엄마’가 양육자의

 역할을 담당하지만,

다른 이가 이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누군가만 보호와

양육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이가

이런 책임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세상이 좀 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요?

수원신학교 성당입니다.

어제 개학한 신학생들과 함께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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