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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4 조회수2,69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6814/주일복음말씀묵상/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루카12,49-50; 마태10,34-36)

 

 

주님은 원래 하느님이셨으나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으시므로 사람의 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그분이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육신의 생명을 벗어야 한다! 주님은 루카12,49-50에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은 하느님의 생명, 곧 그리스도의 생명인 신성한 생명의 불이다! 그분은 인간 껍질 안에 싸여 있었고, 가두어져 있었고, 갇혀져 있었다! 그분은 인간 껍질에 의해 속박 당하셨다! 그러나 부활의 때로부터 , 이 땅에서 타오르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의 감추어졌던 영광이 해방되었을 때, 신성한 불이 땅에 던져져 온 땅을 불태우고 있다!

 

을 세상()에 던졌다는 것은 이 불이 원래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임을 증명한다. 히브12,29절은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불은 여기에서 하느님의 생명 곧 그리스도의 생명을 대표한다. 주님은 땅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분의 불, 곧 그분의 생명을 얻기를 갈망하신다.

 

그러나 주님이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은 아직 그분의 생명을 얻지 못했으므로, 그분은 그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으랴?”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서 주님은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이 세례를 받은 것은 적어도 3년이 되었는데, 왜 그분은 여기에서 그분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여기서의 세례가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세례의 의미는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죽는 것이요 매장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분명히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의 의미는 이 일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 세례가 대표하는 의미는 바로 죽음이며, 주님에게서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요한복음 1224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이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말씀하신다.

 

주님의 죽음에는 세 방면이 있다. 첫째는 우리를 위해 보혈을 흘리신 방면이다. 둘째는 십자가 위에서의 주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분의 죽음에 참예하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오르실 때 우리도 함께 데리고 가셨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이다!

 

여기서 밀의 죽음은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이다! 밀에게 생명이 있지만 밀의 생명은 껍질에 싸여 있다. 반드시 밀을 땅에 심어서 밀 껍질이 물과 공기의 작용으로 터지고 부서져야 생명이 그 안에서부터 나와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가지와 잎을 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독생자가 죽으심으로 오늘날 수많은 하느님의 아들을 얻게 했다!

 

예수님은 출생하시기 전에 하느님의 생명은 추상적이었고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출생하신 후에 하느님의 생명은 육체에 둘러싸였다. 그 후에 그분은 골고다에 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분의 생명을 해방하셨다! 하느님의 목적은 원래 그분의 독생자가 맏아들이 되심으로 많은 아들들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제 독생자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생명을 해방해 내심으로써 많은 아들들이 산출되었다.

 

주님은 그분이 부활하신 그날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요한20,17). 원래 아버지는 다만 그리스도의 아버지였다. 원래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느님의 독생자는 없어졌고 맏아들만 있게 되었다!

히브2,11절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것처럼 우리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얻었으며 우리의 생명은 그분과 똑 같다! 알렐루야! 주님의 사랑은 늘 우리를 하나로 일치하게 하며, 주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뜻에 순복하여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으신 십자가 위에서 드러난다!

 

”, 곧 그분의 신성한 생명은 그분의 육체의 죽음을 통하여 해방된 후에, 부활 안에서 51-53절의 분쟁을 야기 시키는 영적 생명의 충격력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불길이 되신다! 51절은 여러분은 내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도리어 분쟁을 일으키러 왔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여기서 도리어 분쟁을 일으키러 왔습니다.”마태10,34절에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평화가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이라는 단어는 루카2,35절과 동일한 의미가 있는데,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는 말씀에서 특별히 감정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평화는 화해와 안전과 조화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지 않았음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과 화해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오심은 모든 믿는 이들로 하여금 칼의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 왜냐하면 사탄의 왕국에 침입하여 하느님의 나라(왕국)가 건설되는 상황에서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하느님 나라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결단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임하는 영적인 실재이므로, 사탄의 지배를 벗어나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음에서 삶을 택하는 결단이 요청된다! 이 결단을 내릴 때는 자신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모든 대상을 잘라버려야 하고, 또한 그러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겪어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뜻으로 검, 곧 말씀으로 세상의 세력과 욕망을 잘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52-53절은 이제부터 한 집에 있는 다섯 식구가 분쟁할 것인데, 셋이 둘과 맞서고, 둘이 셋과 맞설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과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고, 어머니가 딸과 맞서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맞서서 분쟁할 것입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는 우리의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큰 사랑의 요구가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평화를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과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마태10,36절은 이 부분을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그들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그 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위경인 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고로 소개하면 이러하다! “누구든지 내게 가까이 있는 자는 불에 가까이 있고, 내게서 멀리 있는 자는 그 나라로부터 멀리 있다.”

 

우리가 받은 세례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 면에서는 죽음, 곧 십자가의 속죄를, 또 한 면에서는 부활, 곧 생명의 해방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겉 사람이 파쇄 되어야만 속에 있는 생명이 흘러나갈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주 영, 곧 성령이 되신 것은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이다(2코린3,18)! 그분은 신성한 생명주시는 영으로 신성한 생명과 본성을 우리 영 안에 주시기 위하여 그분은 주 영이 되시어 우리의 혼을 변화시키신다!

알렐루야! 아멘.

 

<전문은 http://cafe.daum.net/yoondaniel 을 참고 하시기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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