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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희망을 말하는 이에게 힘 주시는 주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6-08-18 조회수2,40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3-09-24 ㅣ No.84125




2016년 다해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


독서: 에제키엘 37,1-14





예수를 무덤에 안장함


카라바죠 작, (1602-1603),  바티칸 박물관 회화관

 

마귀 들린 딸을 위해서 예수님은 찾아왔던 이방 여인은 예수님께서 아들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잘 참으며 끝까지 예수님께 딸의 치유를 청합니다. 자신은 할 수 없고 주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결국 그 믿음으로 딸을 악에게서 구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분명 믿는 이를 통해 당신 성령을 보내시어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반면 영화 곡성에서 아버지가 악령에 시달리는 딸을 구하지 못한 이유는 그 아버지가 친구들이나, 무당, 성당이나 한 여인, 어떤 누구에게도 끝까지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을 너무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딸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니 자신이 도움을 청했던 이들이 조금만 이상해지는 것 같으면 상대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한 예로 무당이 굿을 하는데 딸이 아파하자 참지 못하고 자신이 원해서 불러놓은 굿판을 다 뒤집어엎습니다. 조금만 더 참으라는 한 여인의 말을 뿌리치고 자신이 직접 딸을 구하러 갔다가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됩니다. 무엇이 중한지도 모르는 이 아버지는 자신만 믿는 교만 때문에 아무도 끝까지 믿지 못하여 가족도 잃고 자신도 잃게 됩니다.

 

오늘 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서 내용 중 가장 잘 알려지고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에 의해 패망하고 성전까지 허물어진 상태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절망감에 신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주님은 에제키엘에게 이런 상태의 이스라엘 백성을 골짜기의 깡마른 뼈 무더기들로 표현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님은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그런 뼈들이 다시 생명이 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에제키엘 예언자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의심을 품지 않고 모든 것은 주님께 달려있음을 고백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알고계신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오로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되어져간다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뼈들에게 다시 살아날 것임을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알아들을 것 같지 않은 뼈들에게 에제키엘 예언자는 순명하며 예언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죄를 이기고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을 영위하게 될 것인지 도저히 불가능해보이기만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그래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예언해야 합니다. 그랬더니 곧 뼈들에게서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이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아직 그것들이 을 쉬고 있지는 못합니다. 아담의 코에 불어넣어 주셨던 생명의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느님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한 인간인 에제키엘에게 성령께도 예언을 하라고 명하십니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 사람의 명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사제들은 예언자로서 말씀의 전례 때 구원의 희망을 안겨주고 성찬의 전례 때는 성령을 불러내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만듭니다. 성령을 불러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 명령할 권한을 성직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제들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지 의심을 품고 두려움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성령을 보내시어 백성을 축성해 주시도록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결단코 어기는 일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은 말씀하시고 그대로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저 믿고 예언하고 축성하여 백성을 살리는 일을 하면 됩니다. 즈카르야는 의심했고 성모님은 믿었습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었고 성모님은 구원을 낳았습니다. 믿고 실행하면 구원을 낳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뼈와 같았던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나는 것들을 목격하며 주님의 말씀엔 거짓이 없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에제키엘 예언자처럼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내몰린 뼈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살려낼 도구로 쓰이려면 주님께서 나를 통해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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