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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2 금/ 사랑을 위한 단식과 사랑의 잔치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01 조회수2,133 추천수6 반대(0) 신고




연중 22주 금, 루카 5,33-39(16.9.2)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루카 5,34)




The question about fasting





사랑을 위한 단식과 사랑의 잔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단식을 지키지 않는다고 문제 삼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5,34-35) 하고 이르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단식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혼인잔치의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을 단식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속죄하는 날(레위 16,30 참조)에만 단식하도록 되어 있는 율법의 요구에 덧붙여 주간의 모든 둘째 날과 다섯째 날에도 단식을 했습니다(루카 18,12 참조). 그렇게 한 이유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굳어진 전통과 관습을 고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야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고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5,39)고 예리하게 지적하십니다. 단식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은 규범과 전통의 준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 단식하는 것이요, 사랑에서 멀어졌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사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단식하는 것입니다. 희생이 뒤따르는 단식을 하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단식은 사랑이신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 신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인 셈입니다. 그것은 사랑을 위한 회개의 몸짓이요 생명을 위한 용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우리는 사랑의 축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거룩한 축제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누구든 단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날이 주님께서 기뻐하실 사랑의 축제가 되도록 말과 생각과 행동을 가지런히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사랑이 고갈되고, 사랑이신 주님을 아득한 기억 속에 묻어두며 세상의 맛에 넋을 잃을 때도 있지요. 그 순간이 바로 ‘신랑을 빼앗기는 때’(5,35), 곧 주님 수난의 때입니다. 하느님 부재의 상황, 인간 존엄성이 상실된 현실, 정의와 평화가 무너진 상황은 단식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서의 각자의 현주소와 우리가 서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랑의 축제를 벌이며 기뻐할 것인지, 아니면 사랑과 정의의 결핍을 채울 수 있도록 사랑의 단식을 할 것인지 분별하여 처신해야겠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축제와 단식의 이중주를 영원히 연주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묵은 것이 좋다.'(5,39)는 고정관념과 굳어버린 관습에서 벗어나,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랑의 단식을 하고, 사랑을 가득 담은 ‘사랑 항아리’가 되어 이 세상에 사랑의 축제를 벌이는 거룩한 기쁨의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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