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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04 조회수1,20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6년 9월 4일

연중 제23주일

제1독서 지혜 9,13-18

13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14 죽어야 할 인간의

생각은 보잘것없고,

저희의 속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15 썩어 없어질 육신이

영혼을 무겁게 하고,

 흙으로 된 이 천막이

 시름겨운 정신을

짓누릅니다.
16 저희는 세상 것도

거의 짐작하지 못하고,

손에 닿는 것조차

거의 찾아내지 못하는데,

하늘의 것을 밝혀낸 자

어디 있겠습니까?
17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18 그러나 그렇게 해

주셨기에 세상 사람들의

길이 올바르게 되고,

사람들이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으며,

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제2독서 필레 9ㄴ-10.12-17

사랑하는 그대여,

 9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10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12 나는 내 심장과 같은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13 그를 내 곁에 두어,

복음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14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15 그가 잠시 그대에게서

떨어져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돌려받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16 이제 그대는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곧 사랑하는

 형제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형제라면,

그대에게는 인간적으로 보나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17 그러므로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제게 일중독이

아니냐는 말씀들을 종종 하십니다.

일을 너무 만든다면서 조금

여유 있게 쉬면서 하라고 합니다.

솔직히 요즘의 제 일정을 보면

이렇게 살아도 될까 라고

할 정도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옛날의 제 모습과 지금의

제 모습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걱정보다는

이것을 해내고 난 뒤의

 제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즉, 기쁜 일, 좋은 일 등을

떠올리다보니

일이 무섭다기보다는

 제게 또 하나의 선물이 주어지는

기회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이 계속 제 곁을

떠나지 않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늘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괜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후회할 뿐입니다.

어차피

맞이할 일과 시간이라면

부정적인 생각이 아닌

긍정적인 생각으로 맞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성지에 있다 보면 큰 병에

 걸렸다면서 안수기도를

청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 드리고

난 뒤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신부님, 제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하는 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 그렇게 나쁘게

살지 않았거든요.

열심히 살았고,

봉사도 하면서 잘 산 것 같은데

제가 왜 이런 병에 걸린거죠?”
그런데 똑같은 병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신부님, 그래도 빨리 병이

 발견되어서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만약 1년 뒤에 발견되었으면

얼마나 고생했겠어요?”
누가 더 지금을

 더 행복하게 살까요?

어쩌면 많은 이들이

이 현재를

놓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에 연연하다가

현재를 놓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화려한 장식품이 아닙니다.

제대로 걷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짐처럼 느껴지지요.

그런데 짐과 같은 십자가

 짊어지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짊어져야 할까요?

 ‘아~~ 힘들어’만을

외치면서 짊어질까요?

아니면 ‘내가 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거야?’라면서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까요?

이런 상태로는 제대로

들 수가 없습니다.

얼마 못가서 분명히

 이 십자가를

어디다 버릴까만을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라면,

즉 피할 수가 없는 것이라면

이 순간을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서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의 하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졌으면 합니다.

삶에서 기분 좋은

시간이 길어지면

행복한 것이다.

(카네만)

특강 전에 있었던

매듭을 푸는 성모님께 드리는 구일기도.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

옛날에 한 산골에 부지런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예쁜 오두막집도 짓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런데 이런 행복을

시기한 것일까요?

어느 날 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글쎄 오두막이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하염없이 불타고 있는 집을

보고 아내는

“아이고~~ 우리 집.

어떻게 해...”를 외치면서

우는 것입니다.
이 나무꾼은 아내에게

이렇게 위로를 했답니다.
“여보, 울지 마!

다 타도 우리에게는

 도끼가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도끼가 있으니

나무를 해 올 수 있고,

이를 통해 돈을 벌어

다시 집을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없어진 것만을 바라보니

도저히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없어진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어떨까요?

어떤 고통과 시련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까?


갑곶성지에서의 토요특강. 11월말까지 계속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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