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05 조회수1,12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6년 9월 5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코린 5,1-8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에서 불륜이

저질러진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교인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그런 불륜입니다.

 곧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산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도 여러분은

 여전히 우쭐거립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슬퍼하며,

그러한 일을 저지른 자를

여러분 가운데에서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나는 비록 몸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과 다름없이,

그러한 짓을 한 자에게

벌써 판결을 내렸습니다.

4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과 나의 영이

우리 주 예수님의 권능을

가지고 함께 모일 때,

5 그러한 자를

사탄에게 넘겨

그 육체는 파멸하게 하고

그 영은

주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의 자만은

좋지 않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린다는 것을

모릅니까?
7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

 8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사악이라는

 누룩이 아니라,

순결과 진실이라는

 누룩 없는 빵을 가지고

축제를 지냅시다.

복음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감정의 자유에 대한 본질을

말해주는 인디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마을의 인디언 추장이 부족

사람들에게 본인의 정신 속에 사는

 개 두 마리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한 마리는 선하고 용기 있는 흰 개이고,

 다른 한 마리는 복수심에 불타고

 화가 난 검은 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마리는

늘 맹렬히 싸운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마을의

 청년 중에 한 명이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해서 물었습니다.
“추장님, 어느 개가 이깁니까?”
그러자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계속 밥을 주는 개.”
우리 마음도 그렇지요.

항상 두 개의 정신이

 싸우고 있습니다.

즉, 선과 악이 자리를 잡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이깁니까?

바로 내가 늘 생각하고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누구도 악한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선함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선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지대한 생각과 관심을 두고

 있다면 선을 누르고 악으로

 기울어질 확률이 커집니다.

왜냐하면 이 안에서 욕심과

이기심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마음으로는 선을 향해

밥을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악을 향해

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안식일을 잘못 알고 있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시간이며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비가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시고자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이

 마비된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즉,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비는

 안식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고통을

감수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냐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항상 선을 향하고 계셨기에

율법이라는 틀을 넘어서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가요?

어떤 형식과 틀을 강조하면서

선보다는 때로는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논리로

악을 선택하는 것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모습이 바로 선과 악 중에서

 악에게 밥을 주는 것이며,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아닌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문제일까요?

마음이 오그라든 사람이

더 큰 문제일까요?

열정을 잃은 사람은

노인과 같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셨던 회당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정소연,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 중에서)

우리는 과거를

바꿀 수 없고,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의 태도를

바꿀 수 없고,

앞으로 일어날 수많은

일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바로 우리의 태도뿐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매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태도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포기하고

좌절에 빠지는 것일까요?

다시 한 번 힘내십시오.

어제 시성되신 성녀 마더 데레사이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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