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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6.09.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08 조회수1,529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6년 9월 8일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제1독서 미카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복음 마태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며칠 전, 갑곶성지에는

귀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바로 전국 주교님 영성모임을

갑곶성지에서 한 것입니다.

교회의 큰 어른들을 모셨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그런데 몇몇 주교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건네주십니다.

 또 몇 분의 주교님께서는 제가

 ‘빠다킹 신부’인 것을

알고 계셨고,

 제 책을 직접 사서 읽었다는

 말씀도 해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저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는데,

 교회의 어른들께서 저를 좋게

평가해주시고 응원까지 해주시니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더군요.

그리고 알아주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더욱 더 신나게

그날 하루를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주교님들께서 알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쁘고 행복한데,

 만약 주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또 칭찬해주시고 인정해주신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묵상을 하다 보니

주님께서는 매 순간 우리를

지지해주셨고 또

응원해주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많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하나의 죄를

물어서 벌을 주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웃을 보내주셨고,

많은 환경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문제는 그 손길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 불평불만을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나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분명히 매 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각자도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삶에서 벗어나,

 주님을 닮은 모습인 적극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강생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모님의 수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성모님께서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고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라고 받아들이시지 않았다면

주님의 사랑이 이 땅에

펼쳐질 수가 없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어떻게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당시에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끔찍한

상황이었는데도,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오늘,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을

우리 역시 마음 안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표현하지 않고서는 마음도,

정열도 전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대화로, 글자로,

생각을 모두 표현해야 비로소

사람과 유대도 생긴다.

(이케다 다이사쿠)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성모님의탄생'

내가 틀렸어

세상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틀렸어.’

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실 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공유하면

상대방은 진솔함을 느껴 그 사람과

심리적으로 가까워지고,

말하는 사람 역시 공개 과정에서

마음의 정화가 일어난다.

이를 ‘공개의 효과

(Effect Of Disclosure)‘

라고 한다.”
자신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저는 커다란

용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용기가 아니라,

커다란 지혜라고 할 수 있네요.

그 지혜를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잘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겠죠?

30년전, 고등학생 때에 다니던 길을

우연히 지나가게 되었네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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