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6,39-42; 연중 23주 금 예수님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루카 6,37)는 말씀에 이어서,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루카 6,41) . 사실, 우리가 누군가를 심판한다는 것은 그것을 그렇게 심판하게 하는 기준이 되는 준거 틀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선입관이나 편견 등 고정관념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자기윤리도덕관념, 자기정의관념, 자기유용성의 원칙, ~ 등 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형제의 눈에서 ‘티’를 바라보게 하고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눈의 ‘들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루카 6,42) 대체, 우리는 우리 눈의 ‘들보’를 어떻게 빼낼 수 있을까? 사실, 보여주는 대로 보고, 들려주는 대로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빛으로 하여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빛이 되어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빛이 나를 비추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곧 받아들인 그 빛으로 상대를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심어진 사랑의 빛을 밝히는 일입니다. 곧 어둠을 몰아내는 것은 그 어떤 인간적인 테라피나 테크닉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빛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심어준 당신의 호의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그를 위하고,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눈의 ‘들보’를 들어내는 것이 곧 심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단지 심판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심판을 불러오는 ‘들보’를 빼내는 것이며, 더 적극적으로는 선을 향한 호의와 지향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루가 6,37). 결국, 심판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것을 넘어, 볼 수 있는 것 그것을 “호의로 보는 것, 곧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임을 밝혀줍니다. 곧 눈에서 ‘들보’를 빼낼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위하는 호의와 사랑의 마음이며, 그리고 그것은 이미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부어주신 은총이요 빛입니다. 아멘. |